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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 나의 완벽한 장례식
  • 조현선
  • 17,100원 (10%950)
  • 2026-01-21
  • : 43,790

아직 다가오지 않을 미래, 지금의 나와는 무관한 사건, 설령 온다 해도 닥치듯 다가오지는 않으리라. 오랜 시간 죽음은 내게 이런 의미였다. 가족, 지인들에 둘러싸여 침대에 누운 주인공이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마지막 말을 남긴 다음 자연스레 눈을 감는 드라마 속 장면이 현실과 닮아 있다 여겨온다. 삶의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을 고요히 직시할 기회가 다만 몇 분이라도 주어지리라 착각한다.

폐암 말기의 만 87세 노인. 3개월~6개월 정도로 보던 닥터의 예측을 과신한 나는 최대치의 잔여기간으로 시곗바늘을 맞춘다. 2개월 9일 만에 다가온 아버지의 죽음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예상은 가능했지만 예상하지 못하던 순간, 방에서 주무시던 당신은 고단한 육체의 무게로부터 홀연히 벗어나신다. 누구에게도 어떤 말도 남기지 않으신 채.

기회가 주어졌다면 당신은 무슨 말을 남기셨을까. 세상을 떠나기 전 어떤 생각을 떠올리셨을까. 인간이 마지막까지 붙들게 되는 기억은 무엇일까. 거대한 역사적 사명을 띠는 사람도, 엄청난 위인도 아닌, 평범한 삶을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무슨 마음을 품을까. 미처 이루지 못한, 가장 아쉬운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답변을 들을 수 없는 질문들이 먼지처럼 부유한다.

 

『나의 완벽한 장례식』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는 미련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령을 볼 수 있는 스무 살 나희는 종합병원 매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다, 그곳을 찾아오는 그림자 없는 손님들의 소원을 들어주게 된다. 옴니버스 구성을 취하는 6편의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매회 망자들의 미련을 해결해 준다.

그들이 붙들고 있는 소원은 허탈할 만큼 사소하다. 동네 미용실 문에 달린 아래쪽 작은 문을 열어 안에 있던 고양이를 구하고, 붕대와 알코올을 구해주고, 사무실 책상 밑에 둔 쇼핑백을 가져다주고, 핸드폰을 찾아서 보내지 못한 메일이 발송되도록 해주고, 죽은 개의 주인을 찾아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주고, 할머니의 미안한 마음이 당신의 딸에게 전해지도록 돕는 것. 당사자조차 살아가면서 상상해 보지 않았을 소원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존재를 위하는 마음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죽는 순간 꽉 잡고 있던 한 가지 기억'은 산책하다 우연히 찍히는 발자국을 닮았다. '다양한 형태로 불시에 찾아오는' 죽음이기에, '활기차고 건강하게 지속되다가도 어느 순간 절벽처럼 꺾어지기도' 하는 삶이기에 어떤 미련이 남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소설 속에 담긴 미련들을 차례로 떠올리며 유형별로 분류해 본다. 작가가 행동 못지않게 비중을 두고 다루는 요소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이다.

 

오늘 내가 한 말, 들은 말들이 어땠더라. 하기 잘한 말, 하지 않아도 되었을 말, 듣고 싶지 않았던 말, 마음을 데워준 말들이 철썩이는 파도처럼 오갔던 하루를 돌아본다. 이제는 잔잔해진 마음의 바다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던 말들을 잠시 건져 올린다. 말의 온도와 질감과 냄새를 곱씹는다. 바다 밑에 잠겨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말들도 찾아본다. '하고 싶은 말이 남았다는 건 결국 했어야 하는 말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끼는 이들의 얼굴이 스친다. 힘든 순간 기댈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생각하면 난로를 피운 듯 마음이 데워진다고, 나를 응원해 줘서 고맙다고, 내 삶을 따뜻하게 지켜봐 주어서 더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덩달아 힘을 얻었다고,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가라앉아 굴러다니던 말들이 부력을 얻어 천천히 떠오른다.

말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니 결국 전하지 못한 건 마음이리라. 어질러져 있던 마음을 조금씩 정리하려고 한다. 전해야 할 마음은 소중한 이에게 건네주고, 엉뚱한 데 굴러간 이석처럼 나를 어지럽히는 마음은 콕콕 집어서 버리고, 간직해야 할 마음은 손난로처럼 품으려 한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제자리를 찾아가게 만들려 한다.

 

요즘은 물건을 버리는 중이다. 가족들과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작년 8월 즈음부터 나는 강화된 미니멀리스트가 된다. 언젠가 멋지게 사용하리라. 이런 염원이 담겨있었을 선글라스 10여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느꼈던 허무, 포장도 뜯지 않은 소소한 물건들과 한 번도 입지 않은 당신의 옷들을 친정 거실에 쌓아 놓으며 물건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생각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언젠가'의 범주에 들어가는 순간, 물건은 공간을 점령하는 아름다운 쓰레기로 머무는 듯하다. 물건의 쓰임은 현재에만 유효한 생명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굿즈를 득템하기 위해 줄기차게 책을 구입하던 시절의 모습은 이제 화석으로 남는다. 물건들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게 된다. 기준은 명확하다. '지금 필요한가. 10년 뒤에도 필요할까. 나의 아이들에게 짐이 될까.' 물건을 앞에 두고 몇 가지 질문을 하니 결정이 쉬워진다.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니라 공간을 얻는 거라 하던가. 점점 단출해지는 환경에 마음이 덩달아 후련해진다. 책장은 여전히 안방의 한 면을 그린벨트로 만들고 있지만, 이 구역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려 한다. 책장을 볼 때마다 숲에 온 듯 전해지는 안정감과 책을 펼칠 때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듯한 설렘의 순간을 조금 더 누리려고 한다.

 

죽음은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장치인가. 막연하게 여기던 죽음은 구체성을 띠며 나의 삶에 자리를 잡는다. 삶의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 죽음이 불어오는 바람인 듯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선물이라 생각한다. 삶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눈, 좋은 사람이 풍기는 내면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 행복을 맛볼 수 있는 혀, 힘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세상이 전하는 자극을 삶 전체로 받아들이는 피부. 업그레이드된 감각 기관을 장착하고 살아가는 기분이다.

소설 속 유령들은 미련을 해결하고 홀가분하게 세상과 이별한다. 한 점 아쉬움 없이 떠나는 '완벽한 장례식'이다. 나의 마지막도 그런 모습이기를 원한다. 남겨진 사람들이 기분 좋게 나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준비가 필요하다.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하고 싶은 말을 남김없이 건네고, 가뿐한 마음으로 삶을 채울 것. 과거로 뒷걸음치지 말고, 미래의 걱정을 당겨오지 말고, 늘 현재만을 살아갈 것. 언제든 큐 사인이 떨어지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스탠바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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