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 걸터앉은 집 뒤편에는 절이 있었다. 공양주로 일하시던 어머니 덕분에 절 문턱을 뒷마당인 듯 자연스럽게 드나든다. 일요일마다 여는 어린이 법회에도 언니, 동생들과 종종 참여한다. '귀의'가 뭔지도 모르고 불렀던 노래 '삼귀의', 제목의 의미조차 이제야 알았더라도 리듬과 가사 만은 익숙한 '사홍서원', 문장의 의미도 모른 채 뭐 준다 길래 260자 '반야심경'을 송두리째 외웠던 경이가 우수수 딸려 나온다. 뭘 받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지금도 툭 치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이 구구단인 양 튀어나온다.
의미를 몰랐어도 상관없다. 그 공간을 마주했던 선명한 감각의 기억으로 충분하다. 밟을 때마다 달가닥거리던 절 앞 마당의 자갈 소리, 소리만큼이나 은은하게 풍기던 법당의 향냄새, 약수터에서 졸졸 흘러나오던 시원한 물맛, 마당을 둘러싼 초록들이 사락사락 햇살을 비비던 풍경. 그 안에는 잿빛 몸뻬를 입고 분주하시던 광명화 보살님, 나의 어머니가 있다. 종교는 없지만 불교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이유에는 어릴 적 경험의 영향이 크다. 공간에 깃든 평화로움과 청량한 고요로 둘러싸인 질감이 어린 나는 그저 좋았다.
불교의 시작. 원점이 되는 분은 어떤 생을 살았을까. 『인간 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은 경전 기록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삶과 말씀을 재조명한 책이다. 법륜 스님은 서문에서 저술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분의 삶을 통해 지금 여기 우리 삶의 방향을 점검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라고.
간간이 일화로 들었던 부처님의 말씀보다 이 세상에 계시는 법륜 스님의 말씀을 훨씬 많이 들었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면 유튜브에서 스님의 <즉문즉설>을 찾았으니까. 본질을 꿰뚫는 직설에 속이 후련했다. 지금 하는 고민이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상담자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무슨 답변을 하실지 예측이 될 지경이다.
내게 부처님은 아직 멀기만 한데 스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분은 어떤 느낌일까. 575쪽의 지면은 한 사람의 모든 삶과 사상을 담기에는 좁을 터이다. 법륜 스님은 이 좁은 공간으로 어떤 장면을 들여보내셨을까. 신적인 존재에 더 근접했을 듯한 '붓다' 앞에 '인간'이란 말이 붙으니 새삼 낯설다. 두근거리는 호기심으로 환한 빛을 연상케 하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두어 장을 넘기니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낸 좌상이 시선을 붙든다. 목차에 도달하기도 전에 주춤한다. 무릇 부처님의 모습이란 석굴암에 고고하게 앉아 계시는 뽀샤시하면서도 근엄한 본존불이 디폴트였단 말이다. 앙상한 붓다라니! 이질적인 사진 앞에서 잠시 멍해진다.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서는 읽지도 않은 고전의 요약본을 알 듯 어설픈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생로병사, 고행 중 찝쩍대는 악마의 유혹 같은 일화 말이다. 어째서 물음표를 던져보지 않았던가. 고행의 과정을 지났다면 육신의 살이 붙어있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일 터인데. 뱃가죽이 등가죽에 들러붙었다는 문장을 가시화한 듯 생생하다. 상상해 본 적 없는 모습이라 더 인상적이다.
이름도 붙어있지 않은 불상의 정체가 궁금했다. 덕분에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불상의 사진을 구경한다. 단식 고행을 하던 해탈 전의 모습이고 작품명은 '고행상(Fasting Buddha)'임을 알았다. 파키스탄의 라호르 박물관 소장본이 유명하며 이를 본떠 수많은 고행상이 만들어진다. 이 책에 수록된 불상은 문경의 정토수련원에 있는 것으로 인도에서 제작해서 들여왔다고 한다. 정토출판에서 출간한 책이니 굳이 출처를 표기할 필요가 없었나 보다.
서장에서는 인도의 사상과 역사를 소개한다. 인도 역사에는 전통적인 계급 세습 제도인 '카스트'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원전 1300년 정도를 시원으로 본다는 기록이 많으며 공식적으로는 1950년에 폐지되었다. 무려 3,250여 년간 존속되어 온 제도이다. 피라미드 형태의 분류도에는 위로부터 제사장인 '브라만', 무사나 왕족인 '크샤트리아', 평민인 '바이샤', 노예인 '수드라'가 차례로 분포한다.
충격적인 건 여기가 바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발아래에는 거대한 지하 세계가 있다. '불가촉천민(Untouchable)'이라 불리는 '달리트'는 닿아서는 안되는 계급 밖의 사람들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꼬꼬무 카스트에는 이들보다 더한 존재가 있다. 인구 등록조차 되지 않는 '불가시천민(Unseeables)'이다. 다른 이가 보아서는 안 되니 밤에 이동하고 이동 흔적을 지우고 다니며 목에 방울까지 매달았다고 한다.
출생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정해지는 제도라니! 누구의 잘못도 아닌 염색체 이상 증후군처럼 말이다. 고려와 조선의 양반 제도뿐 아니라 미국에도 노예 제도가 있었음을 떠올린다. 세계 여러 나라 계급의 역사는 검색할수록 짙은 씁쓸함을 남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을 수직으로 줄 세워서 지배하려는 건 인간이란 종의 타고난 본성인가.
태어나보니 노예로 정해진 삶은 가늠해 본다는 말조차 조심스럽다. 이토록 불합리한 제도의 그물이 옭아맨 세상에서 불평등으로 인해 그들에게 쏟아졌을 고통을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안도감만 삼킬 뿐이다. 시험용으로 외웠던 학창 시절의 '카스트'에 고통 따위는 없었건만. 아무런 감흥 없이 밍밍한 껍데기만 잠시 넣었다 뱉고 금세 잊어버린 셈이다.
부처님의 성은 고타마, 이름은 싯다르타이다. '석가족의 성자'라는 의미로 깨달음 이후에는 '석가모니'라는 존칭으로도 불린다. 카스트 계급은 크샤트리아로 왕족 출신이다. 소위 금수저이시다.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나 놓고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 드라마 <스토브 리그> 주인공의 대사다. 이 문장을 떠올리며 부처님의 위대한 점을 발견한다. 냉철한 자아 성찰에 따른 현실 직시이다. 그분은 3루에서 태어나 놓고 스스로 3루타를 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깨닫는 데 머무른다면 진정한 깨달음이 아닐 터이다. 부처님은 망설이지 않고 3루를 떠나 1루로 거슬러 가신다. 고통이 공기처럼 머무는 곳, 매 순간 고통을 호흡하는 이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나 같이 평범한 인간은 알았다 하더라도 이게 웬 횡재냐며 모른 척 머물렀을 텐데.
나고 자란 환경에 따라 가치 기준과 생활 관습이 결정되며 한 사람의 인격은 환경으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스님 말씀에 동의한다. 이런 이유로 비슷한 상황이 되면 흘러간 일부 역사가 반복되는 패턴을 보이는 걸까.
환경은 인간의 내재적 성향을 발현하게 만드는 스위치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스위치를 켜려면 일단 환경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파도가 두려워 항구에만 정박한 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환경에 자유 의지가 결합 되면 잠자고 있던 불성이 화르르 타오르리라. 불교의 목적은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하니 야! 너두!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탄생과 성장, 출가, 고행과 성도, 전도의 개시,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 위대한 열반에 이르기까지 인간 '고타마 싯다르타'가 걸어간 삶의 여정과 사상을 천천히 따라간다. 부처님의 여정을 각 장의 앞부분에 지도와 함께 나타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약간 있다. 도시, 나라, 강 등 거쳐가신 경로를 여행기의 노선처럼 보고 싶었다. 생소한 지명이 언급될 때마다 부록에 나온 고대 인도의 16대국 지도를 펼쳐보았지만 몇몇 도시나 중요 나라 외에는 그분의 행적을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부록에 붓다의 연표를 수록해 80년간의 삶을 정리해 주신 점은 좋았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이 있다. 부록의 '찾아보기'를 낱말 뜻으로 구성했으면 어땠을까. '찾아보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이름이나 도시에 대한 설명은 본문 아래에 각주로 달아서 보다 깊은 이해를 돕고 말이다. 어차피 산스크리트어는 '데바다하'나 '데바닷타'나 도통 발음이 비슷해서 그게 그거 같았다. 찾아보기의 배열이 가나다순으로 되어 있으니 본문을 읽을 때마다 뒷면을 들춰보기는 어려웠다. 지명이나 인명은 그러려니 하고 여기에 의문이 가지는 않았으니까.
문제는 그 외의 요소들에 있었다. 기본적인 명사나 서술어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 보니 책장이 더딘 걸음으로 넘어갔다. 스님의 해설에 언급되는 내용도 있으나 불교 관련 용어가 익숙하지 않아 수시로 인터넷을 검색하여 어학 사전이나 위키 백과를 찾았다. '수계사, 사미, 시봉, 보살행, 화현, 용화, 방일함, 예경, 탐사, 반열반, 사자후, 사견, 탐착, 외호하다, 사뢰다, 반야, 제불보살, 가람, 맑히다, 증장, 청수, 자양하다, 사라나무, 팔부대중, 전단나무버섯'. 최근 이틀 동안의 검색어 목록이다. 덕분에 다소 깊이 있는 공부가 된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불교 공부를 하는 학생의 자세로 새로운 낱말을 배우는 듯 겉모습만 익숙한 몇몇 단어의 진정한 의미도 배운다.
첫 번째,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내가 제일 잘 나가' 가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이었던 거다. 더군다나 아(我)에서 '나'의 범위가 1인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였다니! 인간이 우주와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인간 해방 선언을 몰라본 무지몽매한 눈이 트인다.
두 번째, '공양'이다. 사실 '공양'에 대하여 삐딱한 시선을 가져왔다. 차마 말로 뱉지 못한 생각이다. 스스로 음식을 구하지 못하고 어째서 다른 이의 음식을 달라고 하는가. 매번 석연치 않은 마음이었지만 그 어떤 책에서도 시원한 답변을 얻지 못한다. 내가 주제넘은 생각을 하는 걸까. 많은 이들은 이를 당연하다 여기는 걸까.
드디어 이 책에서 답을 얻는다. 다른 이에게 나의 먹을 것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구나. 공양은 나의 것을 나눔이로구나. 나의 몸을 만들 음식을 나누는 것, 결국 나를 나누는 수행인 셈이다.
세 번째, '자비'이다. 무조건적인 이해나 용서가 아니라 보다 큰 의미가 있음을 배운다. 고통에 동참하여 모든 아픔을 함께하고 모든 즐거움을 함께 나누려는 자세, 대등한 관계에서의 사랑,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기희생이다. 자비의 의미를 공부하며 그 예시로 적절하게 언급할 수 있는 보살님 한 분을 떠올린다.
스님은 이 책에 친절하고 맑은 거울을 가져다 놓으셨던 걸까. 세상 그대로의 모습을 비춰보고 이제껏 잘못 알고 있던 세상의 이치를 배우며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본다. 부처님에 대한 세세한 일대기라 짐작하고 문을 열었는데 부처님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법륜 스님께서는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셨음을 깨닫는다.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왔나.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번 한적이 없었(feat. 어머님께)'을 때는 그러지 못했다. 삶은 자잘한 계기를 몇 번 건네면서 내가 소중한 사람임을 알려준다. 지금 나의 주인은 나다. 또한 나만 소중한 게 아니라 당신도 소중한 사람임을 알아야 함을 마음에 새긴다. 한 장 한 장의 책장이 거울인 듯 나를 비춰본다. 삐져나온 머리카락도 정돈하고 표정도 보고 지나온 나와 걸어갈 나를 상상한다.
실천을 강조하는 불교 교리를 기준으로 놓고 보니 말로만 떠드는 사람, 말없이 실천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잔잔한 마음을 품고 찾아보니 제대로 보지 못했던 몇몇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을 가리고 있던 뿌연 안개가 증발이 되어 사라지기라도 한 듯이.
부처님이 지혜와 자비를 갖추신 분이라면, 보살님은 지혜를 구하고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생애에 담긴 가르침을 따라가며 기시감을 느낀다. 인간은 오직 그 행위에 의해서만 그 성품이 결정된다고 했던가.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그분의 가르침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신 훌륭한 조교가 가까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절의 스님께서 어머니께 '광명화 보살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을 때, 우리 식구는 너무 거창한 이름이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빛나는 꽃이라니! 게다가 보살님이라니! 노모의 은빛 머리칼이 점점 빛을 낼수록 스님의 혜안에 나는 종종 감탄한다.
어머니께 용돈을 드릴 때마다 대부분의 돈이 물건으로 페이백 되어 돌아온다. 명절 때마다, 생일 때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험이나 소소한 삶의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때로는 별다른 이유 없이 주변에 많은 것들을 베푸신다. "없이 살아서 그렇지 내가 돈 쓰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꽃처럼 피어나는 어머니의 웃음에 "니 엄마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나 모르겠다." 덩달아 구르는 아버지의 웃음소리. 당신으로 인해 나는 나눔의 삶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근접 사진을 보듯 목도하였으며 고통스러운 현실은 반드시 지나가리라는 긍정 마인드를 품게 되었다.
몇 개의 단어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연결되어 심장 깊은 데에 놓인다. 나에게는 '밥'이 그런 부류에 속하는 단어다. 밥-공양-절-공양주-어머니. 시간과 공간과 감각의 무게 중심이 절묘하게 맞아 들어갈 때 불현듯 툭! 첫 번째 단어에 진동이 전해진다. 쓰러지는 도미노를 촬영한 동영상을 거꾸로 재생하듯 연결 고리가 줄줄이 되살아난다.
7년 전의 5월도 그랬다. 야외에서 개최되는 글짓기 대회에 참여한 날이다. 두 시간 안에 '이팝꽃이 피면'이라는 글제로 작품을 제출하는 미션을 받는다. 밥을 닮은 이팝꽃을 떠올리는 순간, 뺨에 닿는 바람이 참 부드럽다고 생각한 순간, 카테고리의 단어들이 후두둑 눈앞에 펼쳐진다.
'공양주로 일하던 / 어미의 소원은 / 이팝꽃처럼 솔솔 / 갓 지어낸 밥 한 공기 / 내 새끼 뱃속에 담아 / 배불리는 것이었다 // 부처님 공양하고 / 남은 밥 찐 도시락 / 어느 날 삭아버려 / 축 늘어진 이팝꽃 / 자식은 밥을 버리며 / 철없이 투덜댔다 // 30년 뒤 절 마당 / 갓 지어낸 밥 한 공기 / 이팝꽃처럼 솔솔 / 지어주고 싶었지 / 버려진 이팝꽃은 / 노모의 마음속에서 / 여전히 뜨겁게 / 피어나고 있었다 (제목: 이팝꽃처럼 솔솔)'
가난의 고통은 당신 덕분에 예술로 피어난다. 대회에서 얻은 결과로 나는 글을 계속 써나갈 용기를 얻는다.
글을 쓸 때마다 종종 이 시를 언급한다. 시를 짓던 그날의 두 시간이 파일에 저장된 동영상처럼 꺼낼 때마다 생생하다.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나의 가슴은 뜨겁다. 어머니가 담긴 글은 매번 그렇다. 따끔거리면서도 글 안에 새기면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희열이 느껴진다.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 통역사처럼 문장이 흘러나온다. 글을 쓰는 현재의 모습을 한 손으로 잡고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면 고통의 바람이 불어왔던 순간마다 당신이 빛의 꽃으로 피어있다. 덕분에 함께 하는 고통 속에서 덜 춥고 덜 외로웠다.
"몇 달을 점심때마다 곰국 먹는 거, 질리지 않니?" 취업을 준비하는 곰국 마니아에게 묻는다. "엄마! 엄마는 매일 먹는 밥이 질려?" 글 속의 어머니는 이런 의미일까. 매일 먹는 새 밥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존재 말이다.
석가탄신일을 부처님 '오신' 날이라 부른 건 그분이 오시기를 바랬던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었으리라. 그리고 이미 내 곁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보살님이 오셨던 건지도 모른다. 부처님, 불경, 스님, 절을 떠올리면 이 모든 배경을 뚫고 나의 공양주, 광명화 보살님이 은은한 햇살처럼 심장을 비춘다. 연기설이 사실이라면 나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내 곁에 머문 보살님과 몇십 년의 삶을 공유하는 행운을 누렸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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