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나에게 별은 하늘하늘한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 별과 행성에 관한 백과사전을 몰입하며 펼쳐보곤 했다. 교과서 밖 지식에 관심이 간 건 천체 분야가 유일했다. 토성의 고리가 꼴랑 세 개라는 지식이 버젓이 담겨있었어도 교과서를 벗어난 미지의 세계는 어린 가슴을 뛰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큰개자리의 알파 별 '시리우스'는 중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하던 별이다. 오리온자리의 삼태성을 따라 쭉 내려가 수시로 내 마음의 원픽을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잊고 있었다. 내가 별을 참 좋아하던 아이였다는 사실을.
20대의 나에게 별은 분홍분홍한 로망이었다. 반은 허세로 구입한 과학 잡지 '뉴턴'에도 고화질의 천체 사진이 많이 등장했다. 사진만 몇 번 들썩이다 일 년 정도 지나 자연스레 관심 밖으로 퇴출되었지만, '뉴턴'과의 첫 만남도 선명한 성단과 성운 사진이었다. 종이계의 비단인 듯 좌르르 광택이 흐르는 사진을 넘겨보던 손끝의 두근거림이 아직도 또렷하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가슴에 남아있는 로맨틱한 인간마냥.
로망에 현실의 바람이 불어온 건 30대이다.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옆 라인의 것을 이용하라며 잠시 아파트 옥상 문을 개방했던 날의 일이다. 당시 꼭대기 15층에 거주하던 나는 새벽이 되기를 호시탐탐 노리다 옥상에 슬그머니 올라간다. 도시의 밤하늘은 어떤 시각에 고개를 쳐들든 도통 음침해지지 않으니 만나기 힘든 기회가 온 셈이다. 오른손에는 손전등을, 왼손에는 동그란 별자리판을 창과 방패인 양 움켜쥐고 드디어 옥상으로 출정하는 나. 오리온자리 발치에 얌전히 앉아 있는 토끼 한 마리를 발견했을 때의 전율이란!
더없이 좋았다, 환경을 인지하기 전까지는. 귀신보다 사람의 무서움을 알기에 그제야 현실이 피부에 와 닿는다. 으슥한 어딘가에서 불쑥 무언가 나타날 것 같았다. 게다가 손전등으로 별자리판을 비춰보며 돌리다 보니 새벽의 한기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새벽에 겨울철 다이아몬드의 고도가 높았으니 늦가을 정도였던 듯하다. 정확한 날짜나 시각은 기억나지 않지만 눈 속에 담겼던 밤하늘만큼은 파랑파랑한 현실과 함께 인화한 사진인 듯 선명하다.
심채경의『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로망과 현실을 동시에 알려주는 천문학자의 에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별이 아니라 별을 보는 '사람'이다. 별을 보는 사람에 관한 단짠단짠의 글이다. 천문학자라고 낭만적으로 별만 바라보는 것은 아님을 작가는 자신의 삶에 비추어 조곤조곤 서술한다. 대학의 비정규직 행성과학자로서의 어려움과 그 길을 걷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준다. 아이의 엄마로서 마주하는 현실의 무게를 솔직한 일화로 소개한다. 천문학 분야의 사회적 이슈에 관한 의견도 피력한다.
천문학의 역사를 서술하는 3부에서 특히 시선이 가는 건 고대 문헌에 기록된 천문 관측의 역사에 관한 내용이다. 오감만으로 그토록 정밀한 관측이 가능했던 걸 보면 지적인 능력은 시간에 비례해서 발달하는 건 아닌 걸까. 작가가 말처럼 우주의 본질은 그대로인데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뿐이니까. 작가의 문장을 따라가며 중간중간 공감도 하면서 나의 삶에 천체가 스며 들어오던 순간들을 떠올리는 여정이 좋았다.
우주의 A부터 Z까지를 총망라했다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관한 글 앞에서는 움찔한다. 심채경 작가처럼 나 역시 몇 년째 그 책이 책꽂이에 우아하게 꽂아만 놓았기 때문이다. 오다가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책등만 쳐다봐 왔다. 존재 자체로 우주의 비밀이 적힌 책을 득템한 듯 뿌듯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책 표지를 넘길 정도의 궁금증은 아직 없는 상태다. 이 정도는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대작을 성급하게 영접하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면 우주로 통하는 문을 열어젖히듯 첫 장을 펼치고 싶다.
이소연 박사의 이야기가 담긴 '최고의 우주인'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불합리성을 짚어주는 칼럼을 보는 듯하다. 다른 이에 대해서는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함을 깨닫는다. '창백한 푸른 점'은 고독한 여행길에 오르기 전에 잠시 고개를 돌린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를 지칭한다. 언젠가 내 곁을 떠나게 될 나의 아이가 겹쳐진다. 엄마로서의 저자의 마음에 공감하며 조만간 다가올 미래를 상상한다. 허전하지만 아름다우리라.
"내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하는 빅3 남자주인공 중 하나인 김희성의 말이다. 나머지 두 명도 매력적이지만 가장 눈길이 간 사람은 김희성이다. 이름부터 내 취향이라. 빛날 희(熙), 별 성(星)이라니!
프롤로그에서 작가의 문장을 읽으며 위 대사를 떠올린다.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그녀.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을 동경한다는 그녀.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는 문장과 닮아있는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에필로그에서도 '뭐라도 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고, 삶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안갯속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어떤' 책이 되긴 되었다'는 솔직한 문장 앞에서 별빛 같은 마음이 묻어 나온다. 모든 별이 그렇듯 뜨거운 열정을 품은 마음이다. 덩달아 가슴이 뜨거워진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일정을 만나면 가슴이 답답해지곤 하던 나는 100%에 근접하는 J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그날의 스케줄을 대략 머릿속으로 짜 놓는다. 계획대로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할 일을 정해 놓은 시각에 무슨 일이건 숨어있다 갑자기 튀어나왔으니. 그게 은근히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한데 이 책에서 섭동에 관련된 현상을 읽으면서부터 요즘은 되레 그 갑툭튀를 기다리게 된다. '섭동'이란 천체의 궤도에 교란을 주는 자잘한 인력들을 말한다. 행성들의 궤도는 섭동으로 인해 매끄러워지지는 않지만 커다란 주 궤도는 변하지 않는다. 내 삶의 고유한 결이 유지되는 것처럼. 나 역시 우주 안에 있는 우주의 일부라 그런 걸까.
그게 신기하면서도 경이롭다. 삶의 섭동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똑같은 순간을 맞이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오늘은 어떤 변수로 내 삶의 궤도가 변할까. 종이에 박제되어 있던 성도가 머리 위에서 펼쳐지는 장면을 보았을 때의 두근거림이 심장 위로 부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