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반사에 가깝다. 책을 읽을 때마다 리뷰를 작성하는 건. 나에게 읽기와 쓰기는 열쇠와 자물쇠처럼 세트로 작용한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왜 꼭 리뷰를 쓰는가. 마음의 물속을 들여다본다. 일렁임이 고요해지니 깊숙이 숨겨진 의도가 수면으로 떠오른다.
나의 행위를 이끌어온 이유를 이제 알겠다. 나를 알고 싶었구나.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치여 브라운 운동을 하는 꽃가루처럼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떠다니고 싶지 않았구나. 원하는 방향을 향해 나의 자유 의지로 삶을 확장하고 싶은 바람이 컸음을 깨닫는다.
그럴싸한 포장지를 벗기면 나의 리뷰는 철저히 나의 심장을 향한다. 많은 사람을 위한다든지 사회에 뭔 이바지를 하고 싶다는 거창한 사명 의식 같은 건 없다. 연고를 바르듯 붕대를 감듯 살아오면서 받아온 크고 작은 상처들을 자가 치유하는 개인적인 과정일 뿐이다, 실은.
책이 의도하는 방향과 다른 엉뚱한 목적지에서 마침표를 찍곤 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리뷰는 나를 위한 재구성이므로. 이 책이 그런 책이었나요? 그런 책이었을리가요. 철저히 제 위주로 뽑아낸 악마의 편집인 거죠. 작가에게서 오징어를 받은 셀프 닥터 쉐프는 당당하게 건더기를 제거하고 오징어 향 첨가 요리를 만들어버린다.
악마의 편집을 위해서는 선행 작업이 필요하다. A4 용지 절반 크기의 이면지와 펜을 준비한다. 책을 읽다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을 만나면 종이에 옮겨 적는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의견도 같이 메모한다. 완독을 하면 나의 원픽으로만 이루어진 메모 문장들을 정독한다.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요리한다. 결국 쭝얼거리고 싶은 생각을 글로 적는 셈이다. 종종 만들어지는 에세이스러운 리뷰에서 작가의 문장은 단지 거들 뿐이다.
예외인 책들도 있다. 작가와 나의 목적지가 같을 때이다. 이 책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 딱 나네!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은 당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이라니! 부제에도 마음이 동한다. 정신분석 전문의가 분야 관련 내용을 적은 책이니 문체만 요상하지 않으면 실망스럽지는 않으리라. 메모 분량이 늘어 12포인트 크기의 글자로 12장을 채웠을 때 예감한다. 악마의 편집이 그다지 필요 없으리라는 것을.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은 삶에서 본질적인 고민을 안게 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행동 지침이 기록된 책이다. 저자 김혜남은 각각의 상담 사례를 예로 들어가며 이정표를 제시한다. 30여 년 동안 사람들을 치료한 경험과 스스로의 삶을 통해 깨달은 사실을 서술한다. 사례 별로 등장하는 아무개 씨의 삶과 나와의 교집합을 발견한다. 심리 상담을 받는 내담자가 된 듯 저자의 말을 경청한다.
<스페셜 에디션을 펴내며>와 <Prologue,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면>에 저자가 하는 말의 핵심이 있다.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매달리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것, 지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 세상과 사람들을 온몸으로 부딪혀 보라는 것,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는 당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단단한 인생을 만들어줄 거라는 것이다.
저자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쓸데없이 많은 정보를 모으는 데 힘 빼지 말고 가장 중요한 기준을 네 가지 정도로 줄일 것, '저걸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부터 버리고 선택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애쓸 것, 최악의 경우를 떠올려 보면 답이 보인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니 뭐라도 시작해야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사고의 대표적인 패턴에도 공감한다. 첫 번째, 나는 실패자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흑백 논리이다. 두 번째, 좋은 결과는 우연이고 나쁜 결과는 내 탓이라 생각하며 의미를 확대 혹은 축소하는 경우이다. 세 번째,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사고의 오류에 근거하여 부정적인 자기상을 만드는 경우이다. 다른 사람이 똑같은 실수를 했을 때 그에게 해 줄 말을 당신 자신에게 해 주라는 말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나는 걱정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앞의 문장이 과거형이라는 점이다. 소심이 디폴트라 온전한 대범을 장착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지금은 걱정이 많이 줄었다. 걱정 해소와 관련된 말들이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반가운 문장이 눈에 띈다. 걱정의 40%는 현실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 30%는 이미 일어난 일, 22%는 사소한 일,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니 4%만이 우리가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팁을 소개한다. 첫째, 통제 불가능한 것과 가능한 것부터 구분하는 것이다. 둘째, 불안은 결코 나를 해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셋째, 지금 당장 무엇인가를 하라는 것이다. 명확하고 확고한 선택으로 결정을 내리는 순간, 걱정의 50%가 사라지고 결정을 실천에 옮길 때 40%가 사라진다는 내용에 후련함을 느낀다.
선택에 대한 멋진 문장도 만난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의 선택이 우리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이 한 말이라고 한다. 음미할수록 멋지다. 두려우면서도 적극적인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잘못을 하거나 사건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에 대한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 섬세한 차이가 삶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만들어내리라.
날카로운 화살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문장에서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현자스러운 이가 타인이 하는 말을 화살로 비유하며 이런 말을 한다. 말의 화살은 당신의 근처에 떨어지지만 직접 당신의 심장을 뚫지는 못한다고. 굳이 화살을 주워서 심장에 꽂는 사람은 그 말을 곱씹으며 속상해 하는 당신 자신이라고. 화살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웠지만 그 내용을 되새기며 상처를 치유하려 노력한 시간들이 있다.
모든 감정은 옳다는 문장을 보며 나의 감정을 들여다본다. 감정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는 말, 일에 대한 비판을 당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을 천천히 보듬는다. 감정 표현법에도 귀를 기울인다. 나는 ~ 라고 느낀다고 말할 것, 격한 상태에서는 공명 현상을 일으키므로 가급적 표현을 삼가할 것, 감정에 충실하되 감정을 너무 믿지 말 것을.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문장에 담긴 냉철함을 본다. 화를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 6가지를 메모한다. 먼저 숫자부터 셀 것,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것, 화를 낸 이유는 사실 두렵기 때문이라는 것, 화났을 때는 어떤 결심이나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 화내는 것을 내일로 미루어 보라는 것, 인생에서 사람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친밀한 관계에 대한 저자의 문장을 지나며 그와의 관계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는다. 가까워지는 것이 거절당하는 것보다 더 두려울 수 있다는 것, 가깝다는 이유로 나의 방식을 강요하지 말 것, 친밀해지고 싶다면 상처 입을 각오부터 할 것,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순간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
'경청'이란 상대방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들어 있는 마음을 이해하는 작업이라는 말에 코끝이 시큰하다. 방금 그가 건넨 말 너머에 있는 마음을 본다. 당신, 이걸 알아주기 바라는 구나. 말의 껍질을 벗기고 한 뼘 더 들어가니 마주 선 이의 마음이 보인다.
숨을 고를 시간을 만들 것, 상대방이 말하는 도중에 비판하지 말 것,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감춰진 감정을 헤아려 볼 것, 보디 랭귀지에 더 주목할 것,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만 질문할 것, 피곤하고 지쳐 있을 때는 양해를 구할 것, 듣는 것을 즐길 것, 결정적인 순간에만 말할 것을 타인을 대하는 8계명으로 여기고 마음에 새긴다.
화목한 가정은 싸움이 없는 집이 아니라 싸워도 금방 화해하고 풀 수 있는 집이라는 말, 슬픔을 나누는 방법은 그저 곁에 같이 있어주면서 손을 꼭 잡아 주거나 가만히 안아 주거나 등을 토닥여 주면서 같이 슬퍼해 주면 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바꿀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삶, 잠시 모든 짐을 내려놓고 그냥 나만 챙기는 삶,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 저자가 그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불완전했던 과거를 소환한다. 이상적인 풍경이 다가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버티고 또 버텼던 순간들이 스친다. '결코 완벽한 때는 오지 않는 법입니다.' 저자의 문장 앞에서 멈칫한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바라는 삶을 유예하며 나를 질질 끌고 왔던 건 짐을 내려놓을 용기가 부족했던 까닭임을.
과정으로서의 삶은 완벽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때까지, 그때까지만을 바라지만 '그때'는 오지 않는다. 그때를 좇는 내가 늘 그때보다 뒤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생각하라는 저자의 권유는 이런 이유로 가장 현명한 처방이다. 42세에 파킨슨 병 진단을 받고 그로부터 22년을 걸어온 저자가 삶을 대하는 적극적인 태도에 깨닫는 바가 크다.
모든 성장에는 성장통이 따른다는 말, 우리 모두는 자연 치유력을 갖고 있다는 말에서 힘을 얻는다. 마음이 서서히 정리된다. 정리의 본질은 나를 기준으로 중요도를 판단하여 물건들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감정이든 관계든 재배치를 해본다. 영화 <곡성>에 나온다는 대사처럼, "뭣이 중헌디?" 스스로 질문한다. 예전보다 기준이 명확해지니 답을 내리는 마음이 후련하다.
말을 하는 것과 듣는 게 별개일 때가 많다. 타인을 향하는 말은 수학에서의 여집합과 같다. 내 입에서 나오면서도 나를 제외한 마음을 향한다. 한쪽 방향 화살표처럼.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음원과 마주 서야 한다. 고요한 장소에서 타인의 말을 듣는 좋은 방법은 책을 마주하는 거다. 낯선 문장을 거울인 듯 마주 보는 순간, 글은 타인의 말이 되어 나의 마음으로 흘러든다.
작가의 말을 따라간다. 그녀의 목소리를 모르니 마음속으로 천천히 읽는다. 낯선 저자의 문장이 담담하게 심장을 울린다. 글로 말하는 친구를 눈앞에 데려온 듯한 기분이다. 영혼의 속도에 맞춰 문장과 함께 시간을 걸어간다. 막연하던 생각이 실체로 구현된 문장들을 본다. 방금 요리한 반숙 계란을 톡 터뜨리는 순간처럼 따뜻한 노른자가 느리게 흘러나온다.
가랑비처럼 젖어드는 글자에 기대어 며칠을 보낸다. 수많은 글자들이 모닥불을 피우는 나뭇가지라도 되는 양 마음에 서서히 온기를 전한다. 그동안 나, 많이 지쳐있었구나. 온종일 정신없이 일하다 침대에 눕는 순간 그제야 피곤했음을 깨닫는 사람처럼 뒤늦게 마음을 살핀다. 눅눅한 습기가 배어드는 줄도 모르고 안개 자욱한 길을 걸어왔을까. 점점 보송보송해지는 느낌이 뭉클하면서도 그저 좋다.
※
p17, 2째 줄: : → : : (콜론 하나 빠짐)
p224, 4째 줄: 아니 하는 만 못한 → 아니 하느니만 못한
p240, 밑에서 3째 줄: 밀려vv설 → 밀려v설(띄어쓰기)
* 개인적인 아쉬움
p12~14, 프롤로그의 파킨슨병 관련 문장과
p14, 30대 관련 문장이
각각 p80~82, p289~290의 본문 내용과 중복된다.
저자의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프롤로그가 조금 짧았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