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나비종
  • 함익병을 말한다
  • 함익병.지승호
  • 15,300원 (10%850)
  • 2022-11-28
  • : 2,015

인체에서 가장 넓은 장기, 피부다. 제주도 해녀가 입는 잠수복을 떠올린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검정 스키니스러운 천으로 둘러싸인 옷 말이다.

피부라는 옷을 전체적으로 인식해 본 적은 없다. 온몸을 구석구석 세밀한 시선으로 탐색한다. 지형으로 비유하면 파란만장하다. 어두운 얼룩과 작은 골짜기와 울퉁불퉁한 모래알들이 흩어진 얼굴, 왼쪽 발바닥은 군데군데 보호막이 벗겨져 있다. 양쪽 발뒤꿈치와 손끝은 사막이다. 윤기 좌르르 흐르는 비옥한 토양이 드물다. 전체적으로 건조 지형이다.

얼굴만은 깐 달걀이었던 적이 있었었었건만 까마득한 대과거이다. 시간의 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되나 이제는 까지 않은 신선한 달걀 표면이다. 거칠어졌다. 관리를 좀 할 걸 그랬나 때늦은 뒷북을 친다. 피부에 관한 진실을 말해주는 책을 읽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피부는 타고 난다는 점, 전적으로 유전적인 요소가 많다는 사실이다.

 

『함익병을 말한다』는 전업 인터뷰어 지승호가 피부과 의사 함익병을 인터뷰한 대담집이다.

인터뷰 작가 지승호의 글은 몇 번 접한 적이 있다. 들어가는 글에 시상식 수상 소감처럼 책이 나오기까지 관여한 모든 이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언급하는 사람, 숨어서 일하는 이들의 노고를 아는 세심한 작가다. 독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사람, 평소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다.

솔직히 함익병이란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지나가던 직장 동료가 책 표지를 보더니, "아! 이 사람~!" 한다. "유명한 사람이예요?" "왜, TV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나왔던 의사잖아요." 자연스럽게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말을 들으며 유명인인가 한다. 드라마에 한 번 꽂히면 줄기차게 본방을 사수하는 드라매니아지만 다른 TV 프로그램은 뉴스나 볼까 잘 보지 않으니까. 주문한 책을 받아보고 나서야 피부과 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나에게는 오히려 인터뷰어인 지승호가 익숙하다. 졸지에 작가에 대해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오롯이 글로만 알아가는 기회를 갖는다.

 

6장으로 편성되어 있지만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3장 '피부에 헛돈 쓰지 마라'와 4장 '피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서는 피부 관련 지식을 언급한다. 피부과 전문의로서 피부 질환이나 상식에 관해 일반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을 정확하게 짚어준다.

둘째, 1장 '함익병을 말한다'와 6장 '함익병이 말한다'에서는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세상사에 대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셋째, 2장 '대한민국 피부과의 역사를 바꾸다'와 5장 '호통왕 함익병'에서는 피부과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개업을 하기까지의 과정, 의료계의 현실, 직업인으로서 의사의 입장을 밝힌다.

피부 건강을 위해 함익병이 언급한 노하우는 한결같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골고루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실천 요소와 일맥상통한다.

 

인터뷰 내용 만으로도 한 인간적인 면모를 아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어떤 사안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듣다 보면 컴퓨터에 사용되는 단 두 가지 숫자, 0과 1을 보는 듯하다. 그의 사고 체계는 깔끔한 알고리즘을 연상케 한다. 머릿속을 디지털화시키고 계량화시킬 줄 알면 복잡한 문제를 풀어가는 데 쉽다는 말에 공감한다.

최초로 레이저를 도입하여 피부과의 역사를 바꾸기까지의 과정에서 삶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자세를 배운다. 절박하면 두려움이 없어진다며 과감한 선택을 하는 결단력이 보인다.

주관이 확실하며 확고하게 자신의 의지를 믿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런 성향이 말에서 드러난다. 어투와 내용뿐 아니라 문장의 배열 곳곳에서 그가 묻어 나온다.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짐작해 본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표현하면, 100%에 가까운 T가 포함된 ESTJ 유형이라 말할 수 있을까.

 

피부 질환에 대하여 상담을 받은 기분이다. 피부 관련 궁금증을 많이 해소한다. 감성적인 내용 없이 팩트만 말하니 오히려 편하다. 이렇게 명쾌하고 단순하고 시원할 수가! 의사로서의 행동 기준이 명확해 가족에게 할 수 있는 처방이라면 환자에게 권한다는 말에 신뢰가 간다.

피부 노화를 막기 위해 자외선 차단제나 보습을 말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인 안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역시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인가. 거의 모든 발병의 원인으로 안 끼는 데가 없는 걸 보니! 릴렉스, 릴렉스가 필요하다.

그는 아토피 피부염, 제모, 여드름, 피부 노화 등 우리가 피부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왜곡된 지식을 바로 잡아준다.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은 각질이 제거 대상이 아니라 보호 대상이라는 거다. 주변에서 선크림, 아이크림은 꼭 발라야 한다고 자주 말해주지만 귀찮아서 제대로 바르지 않았다.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얼굴 피부에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나마 선크림은 그럭저럭 바르는 편이지만 각질 제거도 해야 하나 망설이던 차이다. 휴! 안도의 숨을 쉰다.

 

직업인으로서 의사는 돈만 밝히는 것이 아니고, 돈을 밝히는 거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냉철하게 보면 무한한 봉사를 요구하는 거 자체가 무리이다.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사명 의식은 있어야 하지만 직업을 갖는 중요한 목적은 생계를 유지하는 거니까.

의사로서의 고충을 말해주는 진상 환자의 사례를 접하며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비교적 양호한 환자였지만 나 역시 불필요한 말을 간혹 했던 듯하기 때문이다. 증상을 듣고 정확하게 병을 진단하여 고쳐주는 게 의사의 역할이다. 이 과정에서 증상과 관계없는 말을 하는 건 본질을 흐리며 병을 낫게 하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료보험 수가를 듣고 그동안 지불한 돈에 비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대학 병원에서 아버지의 뇌 건강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검사를 권유받아 실시했던 기억이 난다. 유난히 검사를 많이 했던 이유가 돈과도 관련 있다고 생각하니 의심의 눈길이 간다.

 

세상 안에서 굳건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인간으로서의 자세를 보여준다.

왼쪽 눈으로 보면 왼쪽이 먼저 보이고, 오른쪽 눈으로 보면 오른쪽이 먼저 보이는 차이일 뿐이라며 사물의 본질을 언급한다. 소위 좌파와 우파도 편견 없는 시각으로 바라본다.

젊은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보며 '그 답다'고 생각한다. 생을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이 있어야 하며 자신이 한 말에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사는 젊은이가 되었으면 한다고 당부한다.

문장에 담긴 내용과 어투는 그에 대하여 많은 걸 알려준다. 너무 직설적이고 비판적인 면모가 있어 초반에는 다소 거부감이 들었지만, 고유의 성격으로 인정하니 이해된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 데 책 한 권으로는 어림도 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익병이란 사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누가 보지 않아도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 작은 행동으로도 인성을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동네에 있는 내과 두 군데에 가본 적이 있다. 한 분은 나에게 몇 마디 묻지 않고 말을 유려하게 잘하신다. 또 한 분은 다소 무뚝뚝하시지만 증상을 디테일하게 물어보신다. 언제부터인가 후자 쪽으로 발길이 가게 되었다. 은연 중에 신뢰감을 가졌던 듯하다.

어제는 감기 증상으로 그 병원에 갔다. 의사는 질병을 고치기 위해 필요한 말만을 한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요."

"언제부터 그런 증상이 나타났나요? 두통이나 몸살이나 설사는요?"

청진기를 등에 대고 여러 군데를 짚으면서 호흡 소리를 들어보신다. 이성적으로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분석하니 곁가지 없이 병의 치유를 위한 길로 직진하고 있었다. 나 역시 질문에 부합하는 답만 한다. 진료는 2~3분 만에 클리어된다. 스마트한 환자가 된 듯해 뿌듯했다.

 

삶에 소신을 가진 그를 보며 나의 삶을 돌아본다. 건강해지는 방법을 말하는 그를 보며 건강을 돌아본다. 기대하지 않기에 실망도 없다는 그의 생각에 합리적이고 깔끔한 사고방식을 배운다. 그는 퍼즐 맞추기를 할 때 한 칸의 여유가 있어야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의 퍼즐을 완성해 가며 늘 한 칸의 여유를 가지는 삶을 꿈꾼다.

마음이 건강해야 몸이 건강하고,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 둘은 연속적인 연결 고리를 갖는다. 몸에 좋은 담백한 두부를 먹은 기분이다. 음미할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관망하며 몸과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에게 말해질 수 있는 대상이 되고 싶다. 중력장에서는 휘고 나머지 공간에서는 직진하는 햇살처럼 융통성을 보이면서도 올곧게 빛나는 삶을 살고 싶다. 몸을 덮고 있는 스킨처럼 나의 삶을 감싸고, 촉촉한 얼굴로 만들어주는 스킨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싶어졌다.

 

p54, 5째 줄: 풀어가는데 → 풀어가는 데

p74, 밑에서 2째 줄: 고,어떻게 → 고, 어떻게

p83, 밑에서 2째 줄: 반말하는데 → 반말하는 데

p87, 밑에서 6째 줄: 묻는 데로 → 묻는 대로

p240, 마지막 줄: 마침표 없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