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준다, 는 표현은 익숙하지만 말해준다, 는 표현은 어쩐지 입에 붙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듣는 게 말하는 것보다 어려워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상대의 말을 흘려가며 듣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정말로 상대의 말을, 의도를, 마음을 읽고 듣는다는 건 결코 쉽다고 말할 수 없을 거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1. 사송, 김엄지
인간관계에서 정말 듣는다는 건 뭘까. 단편 속의 남자는 L의 말을 들었다고는 하지만 독자인 내 입장에서 그가 정말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건 상대의 말을 독백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이다.
2. 하루치의 말, 김엄지
내 말을 잘 들어주는(것 같은) 사람이란 얼마나 강력하고 한편으로는 위험해질 수 있는가. 남의 앞에서 무장이 해제되어 안 해도 좋을 말을 줄줄 늘어놓고 집에 와서 후회하고 자기검열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3. 나의 살던 고향은, 백온유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의 고향 한서는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듣는 사람은 없는 곳이다. 이런 곳에 있으면 본인 역시도 듣는 방법을 잊게 된다. 가장 먼저로는 본인의 마음 속 소리조차 못 듣게 되는 것이다. 버섯 산을 태웠으니 이제 들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날 수 있었으면 한다.
4. 폭음이 들려오면, 서이제
귀지를 빼더니 갑자기 사춘기 조카와 나이 차 많이 나는 누나 모녀 사이에 껴서 청자가 되는 삼촌 이야기. 사실 남의 입을 여는 방법은 들어주는 건데 이 당연한 걸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사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고.
5. 전래되지 않은 동화, 최제훈
모든 소리 다 이상 없이 들리지만 오직 나 자신의 목소리만이 안 들리는 사람의 우왕좌왕 아무 말 동화. 본인 목소리를 못 듣다 보니 개연성과 일관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종래에는 이 전기수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다섯 개의 단편 중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것은 두 번째 이야기인 <하루치의 말>이었다.
말하는 사람이 후회하는 이유가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나. 에 있다면 듣는 사람의 고민은 상대의 의도와 감정을 포착해야 하는 에너지 소모적인 쪽에 있지 않나 싶다. 현서의 잘못과는 별개로 말하고 듣는다는 문제에 있어서는 두 인물의 심리 모두가 이해가 가는 작품이었다.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