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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tixism
  • 과잉 무지개
  • 김용재
  • 14,400원 (10%800)
  • 2025-06-23
  • : 1,623


“산다는 건 도대체 뭐길래, 한없이 놓고 싶다가도 어느 순간 힘껏 붙잡고 싶게 만드는 걸까.”


깔끔하게 죽여주겠다는, 죽음을 도와주겠다는 제안. 뭔가 오징어게임의 포맷이 떠오르는 소재였다. 다만 여기서는 사람을 살인게임에 집어넣는 대신 100일이라는 유예기간을 준다는 사실이 다르지만.

하지만 살고 싶어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지 누구든 기회만 주어지면 살고 싶지 않을까. 그래서 읽기 전부터 너무 걱정했다. 빚도 다 갚아 주고 매월 꼬박꼬박 돈도 준다면, 숨 쉴 틈이 생긴다면 100일이 지난 후 분명히 살고 싶어질 텐데 어떡하지 하면서. 결말이 어떻게 날지 전혀 예상이 안 돼서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과잉 무지개>는 냅다 '살아라 삶은 너무 아름답고 너는 소중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의지를 갖게 한다는 점이 좋았다.

이야기 속에서 죽음을 도와준다고 했던 말과는 달리 저들은 최선을 다해서 준재를 살려 두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장기를 기증해야 하니 건강을 챙기라는 그런 평면적인 이유와는 좀 달랐다. 봉사활동을 보내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게 한다. 준재는 삶을 마무리한다는 의미에서 그 활동들에 최선을 다했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저들이 계속 준재에게 '이래도 살기가 싫냐'고 묻는 듯했다.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는 '삶은 중독'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본능적으로 갈망하게 되는, 중독과도 같은 삶을 포기한다는 건 정말로 살기 싫어서라기보다는 그것을 욕심내고 바랄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말 그대로 재준은 '인생역전'을 한 셈이다. 이들은 빚도 다 갚아 줬고 다달이 돈도 줬다. 만약 이 모든 경험을 하고 재준의 삶이 변함없이 그대로였다면 어땠을까. 과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래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보다, 죽고 싶었던 적이 있는 사람들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우리는 아무리 삶을 놓고 싶더라도, 누군가 와서 우리가 가진 빚을 모두 갚아 주고 월 500씩 통장에 넣어주며 네 죽음을 도와주겠다는 제안까지 받을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고 싶지 않던 경험을 가진, 그 질척한 밑바닥에서 기어나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읽어보면 분명 느끼는 바가 클 것이다.






(자음과모음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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