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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활
애도 일기
곰곰생각하는발  2025/09/30 09:14
  • 고요한 결심
  • 이화열
  • 15,300원 (10%850)
  • 2025-09-25
  • : 3,005


내 하루 루틴은 화장실에서 국어사전을 펼쳐 보는 일이다. 이 생활을 6,7년 하다 보니 이제는 단어에 대한 감각이 발달하게 되었다. < 외롭다 > 와 < 고독하다 > 는 사전적 의미로 같은 말에 가깝지만 내게는 다른 의미다. 전자는 " 끈적이는 액체적 감성 " 에 가깝고 후자는 " 딱딱한 고체적 촉감 " 에 가깝다. 외로움은 듣는 이의 신파적 감성에 호소하는 경향이 높은 반면에 고독은 차가운 촉감을 강조하는 경향이 높다. 외로움은 뜨겁고 고독은 차갑다. 외로움은 자기 감정 통제에 실패했(기에 타인에게 기대려는 마음의) 증명이고 고독은 자기 감정을 적절하게 다스린 결과'다. 고독은 독립적이다.

천명관이 << 고래 >> 에서 고독을 벽돌에 비유했을 때( 박완서가 << 그 남자네 집 >> 에서 아름다운 시절을 구슬에 비유했을 때와 마찬가지로ㅡ ) 나는 직감적으로 이 작품이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장편소설 전체 분량에 비하면 적확한 단어를 사용한 이 문장 하나는 사소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때로는 절대적일 때가 있다. 이화열의 << 고요한 결심 >> 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질문은 왜 " 조용한 결심 " 이 아니라 " 고요한 결심 " 1)인가 _ 라는 의문이었다. 내가 이 책에서 찾고 싶었던 것은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언어의 온도였다.

작가의 시어머니는 조력사를 희망한다. 작가는 시어머니의 결정에 대하여 " 말기암도 중증질환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결정은 큰 충격이었다. " 고 고백한다. 결심의 주체도, 그 결심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가족 모두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기에 이른다. 늙어간다는 것은 안개에 갇힌 풍경 같은 것. 생에 대한 미련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내려놓으면 비로소 보이는 법. 시인 최승자는 말하지 않았던가. 터널은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고 말이다. 그녀의 고요한 결심에는 자기 존엄을 위한, 긴 터널을 통과한 끝에 보이는, 오랜 시간의 경과가 내포되어 있다.

살아 있는 자만이 오로지 죽을 수 있기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_라는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_라는 질문으로 반드시 되돌아온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저마다 자신의 언어를 갖는다고 말하는 작가는 죽음을 준비하는 시어머니를 바라보면서 고요하다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인간이 자신에게조차 소외되는 이유는, 멈추고 존재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데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침묵은 텅 빈 것이 아니라, 답으로 차 있다. 이겨내는 것보다 느긋해지는 것. 나이가 들면서 소리에 둔해지더라도 고요를 들을 줄 아는 것.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고요함 속에 머물러 본 적 있던가. 창문 너머로 펼쳐진 구름바다를 본다. 이 생은 무엇을 남길지가 아니라, 얼마나 가볍게 떠날 수 있는지를 묻는 여정 같다. " ㅡ 197

이 문장에 밑줄을 긋다가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늙는다는 것은 서러운 것이 아니라 단지 서운할 뿐인데 많은 사람들은 서운하기보다는 서러워 한다. 문장 하나하나 구슬 같다. 신파조의 간증 서사(2 에 빠지지 않는 것은 이 책의 탁월한 업적이다.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세상 풍파에 몸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작가는 죽음을 준비하는 시어머니를 바라본다. 깃털처럼 가벼운 영혼은 흔들리지 않는다.


1)

■ < 조용하다 > 는 단어의 풍경은 이렇다 : 학교 수업 종이 땡땡 울렸지만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이때 무섭기로 소문 난 호랑이 선생님이 교실 안으로 들어온다. 화가 난 선생님이 소리친다. " 조용히 해 ! " 정적에 휩싸인 교실. 이때 교실은 고요한 것이 아니라 조용한 것이다. 이처럼 < 조용하다 > 라는 단어는 인위적이며 청각적이다.

■ < 고요하다 > 는 단어의 풍경은 이렇다 : 투명한 유리컵에 흙탕물을 담으면 온통 흙빛이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하면 부유물이 바닥에 가라앉으면서 투명한 물색으로 변한다. 뿌연 시야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투명하고 청명하게 보이는 풍경의 감성이 " 고요 " 다. < 고요하다 > 라는 단어는 자연적이며 시각적이다. 교실은 조용한 것이고 바다는 고요한 것이다.

2) 에세이가 실패하는 지점은 사유보다 사연이 앞서기 때문이다. 사유 없는 경험의 나열은 에세이의 품격을 떨어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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