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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활












1. 악마에게 영혼을 판 출판사 판촉 사원의 심정으로

신기하게도 나는 학창시절부터 " 죽기 전에 읽어야 할 " 영화나 문학 리스트가 있으면 < 도장 깨기 정신 > 으로 체크 리스트를 작성해서 밑줄을 긋는 버릇이 있었다. " 그래, 남들이 국영수에 올인할 때 나는 국영수는 포기하고 영화와 문학에 올인하자 ! " 지금도 <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편 > 에 등록된 영화를 보느라 밤마다 피똥을 싸며 항문에 학문에 열중하고 있다. 이 리스트를 전혀 신뢰하지는 않지만 사내새끼의 교묘한 오기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학창시절에 국영수 포기하느라 인생 폭망했는데 이 목표라도 미션/파서블해야 하지 않겠는가 ! 다음에 소개할 세 편의 문학 작품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국내에 처음 소개된,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훌륭한 작품 세 편이다. 책 파는 데 진심이어서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출판사 판촉 사원의 심정으로 이 글을 남긴다(전에 써두었던 문학 리뷰 글을 수정하여 다시 올린다).

2. 사소한 일(2017), 아다니아 쉬블리 ㅣ 출판사 강

우리는 그동안 팔레스타인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공격하면 뉴스가 되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면 뉴스가 안되는 미디어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독립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하루에 평균 한두 명의 청년들이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살해된다고 한다. 대부분은 검문 불응이나 태도 불순 따위의 사소한 이유이다. 과연 우리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비극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 " 소녀가 도망가면서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다 모래 위로 쓰러지고, 이어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총성이 들렸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드리웠다. 그녀의 머리에서 모래 위로 피가 쏟아졌다. 오후의 햇살이 모래 색깔과 한가지인 그녀의 벗은 엉덩이에 모이는 동안 모래는 쉬지 않고 그녀의 피를 빨아들였다. 운전병은 소녀가 죽지 않은 것 같다고, 그냥 놔두고 갈 수는 없다고, 확인 사살을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잠시 후 여섯 발의 총성이 허공에 울려 퍼졌고,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1949년 8월 13일 아침이었다."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의 소설 << 사소한 일 >> 1부에 나오는 이야기다. 2부는 2000년대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여성이 주인공이다.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이 버스 승객을 대상으로 검문을 하며 신분증을 요구한다. 이곳에서 긴장은 일상화되었지만 길들여지지 않는 불안이다. 여성은 우연히 옛날 신문을 통해서 1949년에 발생한 사건(1부) 을 다룬 기사를 읽는다. 그러고는 이내 괴로워한다. 왜냐하면 소녀(1부)의 사망일과 나(2부)의 생일이 겹쳤기 때문이다. 우연한 겹침이지만 괴롭다. 주인공 " 나 " 는 이 괴로움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그 소녀의 흔적을 찾아나서기로 한다.쉬블리는 소설의 1부와 2부를 데칼코마니 구조로 설계하여 1949년과 2000년대의 상황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제의 비극과 오늘의 비극이 동일하다면 내일의 비극은 오늘의 비극과도 동일한 것은 아닐까 ? 이 소설의 진짜 공포는 오늘의 불안과 공포가 아니라 내일도 변하지 않을 불안과 공포다. 그동안 우리는 반이스라엘 단체가 이스라엘에게 가하는 테러에만 (미디오)노출되었을 뿐, 정작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향해 가해진 무수한 학살의 역사에는 무지하다. 아니, 어쩌면 팔레스타인의 반복된 고통에 대하여 지겨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우리를 향해 쉬블리는 이렇게 말한다. “염소도 다른 염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아는데, 인간은 왜 그러질 못하는가? ”

3. 오블로모프 1,2 (1849년),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ㅣ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톨스토이보다는 도스토옙스키에게 끌리는 까닭은 순전히 내 기질 탓이다. " 이상적 인간 " 보다는 " 이상한 인간 " 에게 끌리는 것은 나의 다크하고 멜랑꼴리하며 삐뚜름한 서정과 함께 독특한 B급 발광 다이오드적 3파장 극성이 큰 몫을 차지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흔히 남성에게 추구하는 불굴의 의지, 정력인지 정렬(열)인지 모를 이상하게 들뜬 열정, 과도한 대의와 명분, 관악산 승냥이 이리의 본성을 숨긴 의리와 남성 간 통정을 뒤집어쓴 우정 따위에 대하여 체질적 반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쌍권총을 든 홍콩 영화 속 영웅들이 이쑤시개 입에 물고 우정과 의리를 말하거나 현대판 마블 속 주인공들이 시커먼 망토 입고 공정과 상식을 외치며 눈알을 불알이며 허리를 고추세우고 이 사회를 자지우지할 때마다 심한 현기증을 느끼곤 한다(독자여, 문장 속 오타에 숨겨진 행간을 알아차리시라). 도대체 왜 저들이 이상적 남성상이란 말인가.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작품을 사랑하지만 무엇보다도 < 지하생활자의 수기 > 는 내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절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애정 하는 작품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 않을 수 있다. 지하생활자의 찌질함은 내가 꽁꽁 숨기고자 했던 나의 불온한 이드였으니 보는(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하생활자가 길거리에서 어깨빵을 상상하며 난투극을 벌이는 에피소드는 알파 메일 사회에서 기죽고 살아가야 하는 고개 숙인 남성들이 은밀하게 꿈꾸는 판타지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남성들, 인정 ? 남성에게 있어서 " 어깨 " 는 " 제 2의 남근 " 이다. 어깨를 툭 친다는 것은 나의 소중이를 슬쩍 건드린다는 소리이니 남자라면 발기탱천하여 분기탱천하여 결투라도 신청해야 된다. 그래서 길에서 우연히 어깨빵을 했다는 이유로 살인극이 자주 벌어지는 것이다. 이 얼마나 찌질한 남성 서사인가.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와 함께 러시아 3대 작가로 알려진 곤차로프(Ivan Aleksandrovich Goncharov)의 << 오블로모프 >> 는 지금까지 묘사된 적 없는 매우 독특한 캐릭터다. 작은 키에 배는 남산 만하고 부모 잘 만나서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남성으로서의 열등감에 쩔어 있다. 그의 주변머리를 보아 몇 년 지나면 넓은 이마를 세월의 훈장처럼 새길 것이 분명하다. 그는 볼품없는 외모로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제 갓 나이 서른을 넘겼지만 단 한번도 연애를 한 적도 없다. 그의 비사교적인 성격은 그를 은둔자로 만든다. 그는 쇼파를 침대삼아 24시간 잠만 잔다. 얼핏 보면 하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부유한 유한계급을 대표하는 한심한 찌질 캐릭터이지만 우리는 일리야 일리치 오블로모프를 결코 미워할 수 없다. 그에게는 선한 본성과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정신 그리고 자연주의에 동화된 시인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불꽃 같은 사랑의 감정이 휘몰아친다. 오블로모프는 올가 프세니치니라는 " 너무나 " 매력적인 여성에게서 사랑 고백을 듣지만 그는 적극적인 구애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오블로모프는 생의 의지도, 욕망의 실현도, 성실한 의욕도 없이 무기력하다. 그의 무위無爲는 허먼 멜빌의 << 필경사 바틀비 >> 에 나오는 바틀비의 I would prefer not to( :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를 닮았다. 바틀비가 무력(無力)을 통해 무력(武力)를 시위하는 것처럼 오블로모프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무위는 순리를 따르며 인위적인 개입을 거부하는 자연주의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무능이라기보다는 노장(노자와 장자)의 무위자연을 닮아다. 영화의 배경이 자본주의의 도입기였던 19세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연(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립으로도 읽힌다. 이 소설은 무기력한 남자의 무중력 연애를 다루지만 공교롭게도 연애를 하지 않는 편을 택하는 남자의 연애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매우 독특한 연애 소설로도 읽힌다. 독자인 우리가 오블로모프의 게으르고 무(기)력한 연애가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그의 기질이 타락과 퇴폐, 그리고 위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순수한 무저항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선한 남자의 무중력 연애 서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연애를 한마디로 규정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는 누구보다 복잡하고(변덕스럽고), 복잡한 만큼 나약하며(무능하며), 나약해서 순수한(무해한) 성격을 가진 입체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오블로모프라는 매우 복잡한 인물을 탁월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에게도 생생한 개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4.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1955년), 브라이언 무어 ㅣ 출판사 을유문화사

재미가 없으면 재능이 있든가, 재능이 없으면 재력이 있든가, 재력이 없으면 매력이 있든가, 매력이 없으면 젊음이 있든가. 유감스럽게도 40대 중년 여성 주디스 헌은 젊음도 없고, 재미도 없고, 재능도 없고, 재력도 없고, 매력도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없는 것은 비단 이것만은 아니다. 그녀는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고, 부모도 없고, 형제자매도 없다. 브라이언 무어의 놀라운 장편소설 <<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 은 통속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매우, 매우, 매우 인상적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오우, 언빌리버블이야. 일가친척이라고는 늙은 이모가 전부였으나 이모의 병수발을 드느라 결혼도 못한 채 젊은 시절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이제는 홀로 서기를 해야 한다. 이 소설은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묘사하지는 않지만 그 누구 못지 않게 외로운 여인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파토스는 파란만장하다. 무고한 남자의 무해한 인생을 다룬 << 스토너 >> 의 신랄하게 재미있는 여성 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혈연단신인 주디스는 적막하고 쓸쓸한 아일랜드 벨파스트 지역에 있는 하숙집에서 독립 생활을 시작한다. 그녀는 몇몇 아이들을 상대로 한 피아노 교습으로 받는 교습비와 형편없는 연금을 보태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한다. 그녀를 힘들 게 하는 것은 생활고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천성이 선한 여자이지만, 그래서 아무도 그녀를 미워하지 않지만 문제는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유일한 남자는 하숙집 여주인의 오빠가 전부이지만 그가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는 이유는 사업 자금이다(그는 그녀가 돈 많은 여자라고 착각한다). 출판사 보도자료를 인용하자면 그녀는 " 친해지고 싶지는 않은 사람, 미워하기보다는 모른 척하고 싶은 인물, 친해지기에는 불편하고 방치하기에는 미안한, 그래서 그냥 없는 셈 치고 싶은 사람 " 이다. 세상이 그녀에게 무관심할 수록 외로움은 뼛속까지 스며든다. 그럴수록 술에 의지한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외로움이라는 녀석의 최고의 술상무는 외로움이라는 녀석이니까. 다들, 알면서....... 일반 통속의 스토리텔링을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주디스 헌은 끝까지 외롭고, 무해하며, 무고한, 그렇다고 친해지고 싶지는 않지만 친해지기에는 불편한, 그래서 그냥 없는 셈 치고 싶은 사람으로 남는다. 자비도 없고 구원도 없다. 이 소설은 문학적 고독의 허세마저 제거한 채 외로움의 정서를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느닷없이 소주 됫병 나발 불고 밤거리에서 지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영화 << 길 >> 에서의 짐파노도 지금의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 저기, 저어기 아일랜드 변두리 벨파스트에 사는 늙은 독신녀의 이야기가 왜 이토록 내 얘기 같아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것일까. 오늘, 소주 됫병 마시고 나발 불린다. 말리지 마시라. 영국 가디언지가 선정한 < 죽기 전에 읽어야 할 1000권 > 에 선정되었으며 BBC ART 선정 < 가장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설 100선 > 에 뽑힌 작품이다. 걸작이다. 끝으로 읽은 책의 수보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 글을 더 많이 읽었지만 이 책의 보도자료를 작성한 직원에게는 보너스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탁월하게 잘 쓴 보도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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