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앞두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여행 전의 행복도가 더 높았다."....이보다 더 흥미로운 결과는 "여행 후의 행복도는 휴가를 다녀온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개 휴가의 긍정적인 효과는 빠르게 사라졌다. - 4장 기다림과 지루함의 기능 p.163
포브스지의 글을 페이스북에서 읽은 적이 있다. 경험소비가 물질소비 보다 효용가치가 더 높다는 내용이었다. 물건을 사면 새제품이 출시된 전후로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 더 좋은 사양의 제품을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전후로 효용가치를 다르게 느낀다. 여행과 같은 경험소비의 경우 경험 대 경험으로 비교우위를 다투지 않는다. 여행 전 기대감은 물론이고 여행이 끝난 이후에도 기억은 추억으로 남고 다양한 의미를 더해진다. 심지어 자아가 성장하는 경험으로 더해질 때 정체성의 일부로 평생 남게 된다.
2018년 경으로 기억하는데, 이 글은 그 당시 나에게 매우 고무적이어서 사십대 후반의 나이에 여행의 즐거움에 추진력을 더한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사례가 제시되거나 구체적인 설명이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씩 더해지는 여행경험에 대한 회고를 반복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삶과 이론을 차근차근 짚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위 책에서 제시된 "여행 전의 기대감"과 포브스지의 "여행 후 지속효과"는 여행이란 경험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함께 봐야 할 내용인 것 같아 아래와 같이 정리해본다.
여행의 심리적 가치: 기대, 경험, 기억
여행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 속의 행복을 설계하는 심리적 구조물이다. 이 장에서는 여행이 어떻게 인간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 시점—기대, 경험, 기억—에 걸쳐 분석한다.
1. 기대 : 의미의 선불효과
여행의 시작은 항상 '떠나기 전'이다. 아직 가지 않은 여행에 대한 상상, 계획, 그리고 카운트다운은 'anticipatory utility(예상 효용)'라는 이름으로 이미 정서적 보상을 발생시킨다. 연구에 따르면 휴가를 앞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명확하게 높은 행복감을 보고한다. 이 행복은 실제 경험과는 무관하게, '곧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희망과 상상에서 비롯된다. 기대감은 일종의 심리적 도피권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현재를 정화시킨다.
2. 경험 : 자율성과 의미의 체화
여행의 본질은 '살아 있는 경험'이다. 이 시점에서는 자율성, 유능감, 그리고 관계성이라는 '자기결정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의 세 축이 중요해진다. 경험적 소비는 물질적 소비와는 달리 삶의 내러티브 속으로 편입된다. 좋은 여행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강화시키고, 삶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또한 타지에서의 새로운 만남, 자연과의 교감, 언어 장벽을 넘는 순간은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한다. 이 경험은 이후의 삶에 심리적 근육을 남긴다.
3. 기억 : 감정의 자산화
여행은 끝나도, 기억은 남는다. 중요한 것은 이 기억이 시간 속에서 미화되고 의미화된다는 점이다. 이는 'rosy view effect'로도 알려져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고통보다 아름다움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 이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삶의 내러티브 속에 다시 등장하여 현재의 나를 규정짓는다. 어떤 여행은 사진첩 속에 남고, 어떤 여행은 내 삶의 결정적인 문장으로 새겨진다. 이러한 감정의 자산화는 경험소비가 물질소비보다 오래 지속되는 심리적 이유를 설명해준다.
결론: 시간 속에서 확장되는 여행의 가치
결과적으로 여행의 심리적 가치는 '기대감'에서 시작해 '경험'으로 구현되며 '기억'으로 완성된다. 여행은 일시적인 도피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관계 맺는 장기적 프로젝트다. 좋은 여행은 삶을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 깊게 통합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세 겹의 심리적 효과—기대의 선불, 경험의 자율, 기억의 자산화—는 여행이 왜 인간에게 계속해서 필요한지에 대한 정교한 해답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