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한다.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정말 아무 걱정없이 다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누군가에게는 그 대상이 남편(혹은 아내)일 수도 있겠고, 부모님일 수도 있겠고, 형제자매이거나, 아니면 친구일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그 남편도, 부모님도, 여동생도, 친구도 그 대상은 아닌 듯 하다. 뭐 하나 잘난 것 없으면서 쓸데없이 자존심만 강한 나는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다름 사람이 알까 두려워 한다. 친정엄마에게 결혼생활을 어려움을 토로하고 싶어도 "네 선택이었으니 현명하게 잘 살아라" - 결혼식날, 엄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서 말문을 닫게 되고 나이 어린 여동생에게는 "언니, 왜그러고 사니" 핀잔 주지 않을까 싶어 "잘 지내고 있다"며 화제거리를 돌리고 더욱이 친구들에게는 없는 자랑거리를 만들어 내야 하지않을까 고민하는 나.
8월 초,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전" 전시회를 보러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탔다. 며칠 전에 동생에게 주려다 어찌어찌하여 내 차지가 된 <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를 가방 속에 챙겨 넣고.
1시간여 걸리는 지하철속에서의 시간. 내 얘기를 가만히 들어주면서 내게 조용히 말을 건네는 친구를 옆에 두고 가는 기분이다.
아이에게 새 옷을 사 입히고 싶을 때, 신혼의 날들이 그리울 때, 돈벼락을 맞고 싶을 때, 삶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친구는 소리내어 말하지 않지만 그림을 통해 얘기한다. 그래, 그렇겠구나. 네 기분 이해해.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떻겠니. 힘내, 절망을 보지 말고 희망을 보라구.
애써 내 고민을 포장할 필요도 없고 숨길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과 내 생각을 책 속에 투영시킨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를 비난하거나 우습게 보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라는 제목과 함께 너무나 우아하게 미소짓는 아리다운 여인의 얼굴이, 표지에서 보여지는 그대로 일세를 풍미했던 유명한 여인들을 모델로 한 책이라고 짐작하게 하지만 실제 책 속의 내용은 생활의 모든 문제를 앞에 놓고 걱정하고 근심할 때 혹은 남과 함께 사소한 기쁨을 나누고 싶을 때 내 얘기에 귀기울여주는 편한 친구처럼 삶에 작은 위로를 건네준다.
오늘,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을 이르게 볼 수 있는 이 청명한 아침에 내 편한 친구를 한 번 만나보시는 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