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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기픈샘

때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했던 봉사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험은 어떤 것이었나" 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이 때 아이들의 대답은 천차만별이어서 그들보다 십 몇년을 더 산 어른이면서도 바로 그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 질 때도 있고(3년전에 우리반 학생 하나는  중학생때부터 독거노인과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급식 봉사를 매.일. 나가는 학생이 있었다.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바로 그런 학생들이 우리들 어른의 선생님이다!), 때로는 대답을 하는 학생들에 대해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호통을 치는 경우도 있는데 호통이 날아갈 때의 대답들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 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는데요, 그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건강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됐어요. "

" 보육원에 가서 아이들 목욕 봉사와 식사 도우미 활동을 했는데요, 다녀 오고 난 이후로 부모임께 더 잘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런 대답을 아이들이 자랑스레 할 때 나는 되묻는다, 그래.너희보다 건강하지도 않고 부모님 없는 아이들을 보니 너희가 저런 상태가 아니어서 안심이 되더냐고. 그래서 기쁘더냐고.

열심히 봉사활동 잘 하고 온 아이들에게 격려를 해 주지는 못 할 망정 왠 심통이며 딴지걸기냐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학생들 대부분의 경우는 봉사활동을 함에 있어서 '그들과 나는 하나'라는 생각보다 '그들과 나는 애초부터 테두리가 둘러져 있는 다른 존재들이며 내가 불쌍한 너희를 위해 베푼다'는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오게 되는 것이다.

너의 불행을 보니 내가 그런 처지가 아니어서 기쁘다는 생각으로 도대체 어떻게 사랑을 전할 수 있겠으며 아이들이 무엇을 깨닫고 배우게 될 것인가. 게다가 스스로를 반대편의 그 위치에 대입시키지 않고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위에 올라가 문제를 바라보면서야 어떻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 배움을 토대로 한 걸음 더 사회 속으로 나아갔을 때  같이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구성원들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사는게 거짓말 같을 때'을 읽으면서는  바로 그런 호통을 나 자신에게 내려치며 읽었다.

그래, 남들 앞에서 떵떵거리지는 못 해도 직업도 있고, 비 피할 집 한 칸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느냐, 그래서 이쯤에서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 아니 어쩌면 내일이라도 당장 내 문제일수도 있는 문제들에 대해 오늘은 눈 감고 못 본 척 하고 싶은 건 아니냐, 네가  그러면서도 아이들 앞에서 입바른 소리를 해 댈 수 있는 것이냐, 이 비겁자, 챙피한 줄 알아라...

얼마전  한 여중생이 전기가 끈긴 집에서 촛불을 켜 놓고 있다가 자다가 숨진 사건이 있었다. 정확하게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몇 천 원에서 몇 만 원이었을 것이다. 그 여중생의 목숨이 담보로 걸려 있던 전기세는.

그 비슷한 시기에 어떤 신문에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장, 단점을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던 적이 있다.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다가 일산의 한 외곽으로 이사를 갔다는 전 00은행장이 인터뷰하길 ' 주상복합 아피트가 통유리로 지어져 있어 외관이 시원하고 전망이 좋으나 여름이면 그 통유리로 햇빛이 온통 내리쬐어 집안이 찜질방 수준인데다가 환기가 잘 안 되니 하루종일 에어컨이 돌아가는데 전기료만 120만원 정도가 나온다'고 했다.

그들은 넘치도록 쬐어지는 햇빛을 몸서리치게 그리워해 본 적이 있을까. 120만원이 아니라 만이천원, 아니 천이백원이 없어서 촛불 속에 사그라진 어린 목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야, 전망이 좋단 말이지. 나는 그런 데 언제나 살아보나'하면서 고개를 외로 꼬고 우리 사회의 아픔을 내 문제가 아니니 나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넘어갔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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