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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채우다
  • 독서의 이름
  • 엄윤숙
  • 15,120원 (10%840)
  • 2024-12-17
  • : 90


#2025 새해 첫 책


 새해에 닿아 첫 책이 도착했다. 하얀 표지에 『독서의 이름』이라는 간결하고도 단호한 제목이 정갈하게 박혀있다. 표준국어대사전뿐만 아니라 우리 고전에서 길어올린 독서의 이름들이 125가지 담겨있는 책. 독서라는 단어 외에 어떤 말로 글 읽기를 말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책 속에서 다양한 이름과 이야기를 만나며 내 곁의 독서를 다시 보게 된다. 내게 독서는 무엇인가, 하고.

 한겨울 한기 서린 창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를 곁에 두고 읽는 책은 삶을 너그럽게 바라보게 하고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준다. 한때 독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나와 싸우는 일이기도 했고 내 밑바닥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중년의 언저리 이른 지금은 나와 비슷한 마음을 발견하고 응원하며 함께 걷다가 다시 삶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읽는 일이 나를 견디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읽고 돌아서면 사라질까 봐 문장을 붙들려 안간힘 쓰던 때가 있었다. 책을 읽어도 내 안에 뜨겁게 구르는 불안만이 가득했던 그때. 멈추지 않고 속도를 덜어내며 책을 읽고 메모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뜨거운 마음을 놓아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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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많이 못 읽었다고 걱정하는 대신 잘못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한다. 매일매일 읽지 않았다고 근심하는 대신 틀리게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근심해야 한다. - 오독(誤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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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권씩 읽어치우는 독서, 생각 없이 그저 이것저것 마구 읽어버리는 남독은 안 읽느니만 못하다. - 남독(濫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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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의 경험이 말할 수 없이 달콤하고 근사하다는 것을 아이의 가슴에 심어주는 엄마와 아빠, 삼촌과 이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자. - 완독(完讀) 중에서


 매일 버릇처럼 펼치고 읽던 행위의 이름들을 만나며 살아있는 것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독서의 이름』을 읽은 이후 나의 독서가 풍부한 방법으로 새로워지리라는 느낌도 들었다. '물을 바라보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맹자의 말씀처럼, 바라볼 때 알고 품을 수 있다. 바라볼 때 규모와 깊이와 뜻을 짐작하여 실감하고 감명하고 감동할 수 있다.(p.6) '나에게 독서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품을 때 독서는 내게 가치와 의미 있는 것이 되고, 하나의 존재가 되어 나를 품는다. 흘러가는 것을 붙잡아 마주보고 인식할 때 그것은 내 안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 된다.


 그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독서의 다양한 모습을 만났다. 독서를 하며 일어나는 한 개인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경험. 독서에서 경계해야 할 것들과 인지해야 할 것들. 혹은 몰랐던 독서법과 이미 하고 있었으나 이름 없던 일들까지. 필요한 마음과 덜어내야 할 마음을 분간해 보는 시간이었다. 배독*하며 읽는 순간들이 삶을 높이고 독서에 깊이를 더해주었다. 옛사람의 삶에 얽힌 독서는 그 당시에 글을 읽던 이의 마음을 가늠하게 한다. 어떤 마음으로 읽었던 것일까. 어떤 간절함으로. 독서의 이름은 저마다의 삶에서 태어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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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하나를 읽을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겹쳐 보이고, 글 한 줄을 읽을 때마다 해야 할 일이 생각나고, 책 한 쪽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뜨겁게 달궈지고,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달려갈 곳의 목록이 늘어나는 것이 독서의 참뜻이다. - 신독(身讀) 중에서


지나치게 열심히 책을 읽는 자에게 권하는 열독(閱讀), 진짜 독서에 다다르게 하는 암독(暗讀), 초행의 느림과 서투름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초독(初讀), 독서의 참뜻을 담고 있는 신독(身讀) 등 독서의 이름을 따라가며 모두 품고 싶은 욕심이 들 만큼 문장도 이야기도 어느 하나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이 아름다움을 반의반만이라도 나의 삶에 가져와 깊이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곁에 두고 아침마다 기도하듯 한 페이지를 열어 그날의 독서법으로 하루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독서가 그런 것처럼 삶 또한 다르지 않기에. 독서의 이름으로, 그러한 태도로 읽어내는 하루는 살아 움직이며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남겨줄까. 오늘 펼친 페이지는 '필독(畢讀)'-계산이 서야 결심이 서고, 시작을 해야 끝을 본다. 해야 할 일을 헤아려 계산하고 결심하고 행하며 마주한 하루 끝에 평온함으로 다음을 기다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배독(拜讀) 절을 올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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