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일인입니다>를 읽었다. 실은 리뷰를 쓰기가 힘들었다. 몰려오는 여러 감정에 압도되어 정리하기도, 써내려가기도 벅찼다. 그래도 써본다. 그래픽노블은 처음 접해봤는데 내용의 깊이가 결코 얕지 않았다. 오히려 온 연령이 다함께 읽고 생각해 볼 수 있는 훌륭한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 부모님이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면, 내 조부모님이 사람들을 여럿 학살한 사람이라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게 될까? 더 확장해서, 내 조상이, 내 민족이 다른 민족을 이유없이 대량학살했다고 하면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할까?
우리는 역사를 가깝게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아주 언뜻만 생각해도 역사는 결코 멀리있지 않다. 우리는 역사 속 인물과 사건들을 평가하고 정의내리기를 반복하며 현재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의 조상은 선해야만 하고 정의로워야만 한다. 그래야 자긍심을 느끼며 살 테니까. (이것이 일본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내 안에 bad blood가 흐르고 있다고 인정하기 싫을테니까)
저자인 노라 크루크는 77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이 책은 히틀러 편에 섰던 본인의 일가족에 대한 조사를 하며 과거를 기억하고, 되짚어보고, 바로잡고, 바로 세우려는 쉼 없는 노력의 결과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는 그때 웃으며 기꺼이 유대인들을 나치에게 고발했을까?’ ‘외삼촌은 그 전투에서 기쁜 마음으로 유대인들을 죽였을까?’와 같은 불안함에 기초한 탐구다.
지난 역사를 처절하게 반성하고 있다는 독일 국민들의 이야기를 추상적으로만 알았지 당사자의 이야기를 이렇게 텍스트로 접한 적은 없었다. (그것도 생생한 자료와 함께!) 이 책을 통해 전후 2세대 독일인들의 내면을 처음 엿볼 수 있었다. 과거청산 교육을 받은 최초 세대에게 ‘독일인’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로운 세대의 정체성은 어디쯤 와있는지 깊이 탐색하고 있다. 정신적 고향을 상실하고 과거의 시간을 부정해야 하는 독일인 마음이 느껴져서 읽는 내내, 그리고 다 읽고 난 후 처연한 여운이 멤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