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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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책장
  • 저 너머의 목소리
  • 요한 테오린
  • 16,650원 (10%920)
  • 2021-10-06
  • : 34

요한 테오린의 ‘욀란드의 사계’ 시리즈 마지막 권이 출간되었다. 같은 시리즈의 이전 출간작들을 읽고 이 작가의 작품 특유의 먹먹한 분위기에 한껏 젖어들었는데, 마지막 권이라니 사뭇 펼치기 아쉽고 망설여졌다. 그리고 기대한 것 이상으로, 바로 전작보다도 훨씬 깊은 여운을 느끼며 책을 덮을 수 있었다. 크, 역시. 괜히 ‘스웨덴 추리소설계의 풍경화가’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가 보다.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탐정 역은 옐로프 다비드손이 맡는다. 어쩌면 ‘미스터리/추리’ 카테고리에서 가장 연장자일 것이 분명한-적어도 최고령자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든다고 생각한다!- 옐로프는 눈도 침침하고 지팡이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먼 거리를 걷지도 못하는 노인이다. 그러나 전직 선장이었다는 이력이 암시하듯, 오랜 세월 거친 바다를 의연하게 버텨온 그는 굳은 의지와 강단으로 미스터리를 차분하게 해결해나가는 인물이다.

이번 이야기 속에서 옐로프 함께 주요한 축을 맡는 인물은 꽤나 어리다. 바로 몇 해 만에 아빠와 친척들과 함께 여름을 보내기 위해 욀란드 섬을 찾은 십 대 소년, 요나스이다. 사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요나스는 어느 날 밤 홀로 보트를 타고 바다 위에서 시간을 보내다, 수상쩍게 생긴 크고 검은 배에 우연히 오르고 만다. 그곳에서 시체 더미와, 그들을 죽인 게 분명한 도끼를 든 남자, 유령같이 창백한 노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충격에 빠진 요나스는 간신히 배를 탈출하는데……. 다급하게 들이닥친 보트창고가 바로 옐로프의 보트창고였다. 옐로프는 이 공포에 질린 가여운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가 겪은 기묘한 사건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기로 한다.

작가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모델로 옐로프라는 인물을 빌드업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옐로프가 어린 요나스를 대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손주를 대하는, 아주 이상적으로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게다가 문화권이 달라서일까, 옐로프와 요나스의 관계는 나이를 넘어서는 우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나스는 옐로프에게 더 의지하고, 옐로프는 요나스를 보듬으며, 마침내는 요나스로부터 큰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한편, 이전 작품에서는 엘로프 주변 인물들의 과거와 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건들이 벌어졌다면, 이번 권에서는 옐로프 자신의 먼 과거와 연결된 인물이 비밀스럽게 등장한다. 그리고 전체 사건의 열쇠 또한 그 자신의 과거와 기억 속에, 정확히는 과거에 만난 바 있는 어느 소년과의 일화에 숨겨져 있다.

볼륨이 ‘역대급’인 만큼 스케일 또한 거대해졌다. 무대는 스웨덴의 욀란드 섬으로 한정되지 않고 대륙을 넘어선다! 작가의 후기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20세기 초에 빈번했던 스웨덴 사람들의 이민과 이주 역사가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다. 왠지 한국의 근현대사와도 겹쳐지는 부분이 엿보여 어떤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나름 ‘탐정의 조수’ 역 같은, 옐로프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욘과의 관계도 관전 포인트이다.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상실’이라는 키워드가 이보다 더 잘 다가왔던 적이 있었을까……. (ㅜㅜ)

가을부터 시작된 시리즈의 종착지는 여름이다. 가장 화려한 계절이 극의 마무리라니, 이 점이 더 큰 여운을 자아내는 듯하다.

분량이 만만치 않지만 그럼에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게 하는 것이 이 작가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약간은 허전한, 먹먹한 여백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시기를.

"네, 마지막 여행이 될 겁니다." 옐로프가 덧붙였다. "이번 여름엔 말이죠."- P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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