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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오래도록 연구해 온 학자들은 인간의 특성을 고도로 발달된 사회성(여기서 사회성은 도덕성, 공감능력을 포함한다)에서 찾아 왔고 여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사회성을 인간의 타고난 능력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살면서 획득되는 특성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논쟁이 있어 왔다. 그런데 최근 관련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성은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담보된 잠재역량이며 그 발현은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띤다. 그리고 그 각양각색의 다양한 모습은 해당 개체(개인)가 모방할 수 있었던 대상(특히 집단)에 의해 결정된다(Begue, 2013; de Waal, 2014; Dunbar, et. al, 2016; Haidt, 2015; Leberman, 2015; Nowak & Highfield, 2012; 정은, 2018).

모델링 자체가 가지는 결정적인 역할은 우리가 모방하는 대상을 ‘도덕적으로‘ 선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좋은 대상(행동)과 조우하면 좋은 것을 모방하고 반대로 나쁜 대상(행동)과 조우하면 나쁜 것을 모방하게 된다(관련된 사례는 Begue, 2013: 143, 151 참고). 이것은 모방이 거의 자동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공감의 무조건성‘에 있다. 2000년에 발견된 거울신경 세포는 이러한 논의에 신뢰를 더하게 하였는데(Goleman, 2006; Lieberman, 2015), de Waal(2014: 83)은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뇌가 자신과 타인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도록 설계"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타인의 신체에 거주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같은 책: 200), 즉 공감은 "무의식적인 신체적 연결에서 시작되며 타인의 표정, 목소리, 정서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 "공감하려고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냥 공감하는 것이다"(같은 책: 20). 동일한 시공간에서의 모방 또 공감능력이 극대화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Goleman, 2006). 관련 연구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공통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공감역량이나 이타심 또 이집단성 등과 같은 좋은 사회적 역량들이 일차적으로 ‘그러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집단(타인과의 관계)에 노출되면서 비로소 구체화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먼저 과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환경이 ‘그러한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인지를 되짚어 물어볼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공감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 창출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이제껏 우리가 학생들에게 ‘타인에게 뻗는 손‘이 되어야 한다. 고 교육했다면, 앞으로는 교육 자체가 그 ‘손‘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이웃교육이 곧 ‘기회의 교육학, 즉 ‘기회 창출의 교육‘이 되어야 함을 뜻한다. 부연하자면, 이러한 주장은 전자(이제까지의 교육)가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구성원들 간의 교류가 구조적으로 취약해져 가는 현대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보다 적극적인 교육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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