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항상 글쓰기가 있었다. 주제도 없고, 장르도 없다. 글쓰기로 이루고 싶은 성취도 없고 부귀영화도 없다. 그저 무엇이든 조금씩 쓰고, 그것으로 언젠가 책을 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글을 써야지, 언젠가 글을 쓸테다 다짐했다. 그런데 나는 일기도 쓰지 않고 리뷰도 쓰지 않고 (지금은) 어떤 글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항상 쓰고 싶어 하는가? 아니 진짜 질문은 이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 나는 항상 글쓰기를 이토록 염원(하는 척) 하면서 글을 쓰지 않는가?
그에 대한 답변은 당연히 준비해두었다. 먼저 가계가 안정되어야 하니까, 어느 정도 돈이 모여야 하니까. 재정이 넉넉해지고 삶이 여유로워지면 그때서야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먹고 살기 바쁘니까. 그런데 생각해보자.
글을 쓰는 일에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이 원고지 10매를 쓰는데 걸린 시간은 단 1시간이다. 글을 쓰는데 당연하게도 연봉 얼마 이상, 아파트 몇 평 이상이 되어야만 글을 자격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그동안 내가 당연히 해왔던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나의 경우 원하는 것은 글쓰기) 이 말이 어떠한 인과관계도 상관관계도 없는 말임을 논리적으로 알려준다. 그런데 정말 이 말이 어떠한 인과관계도 상관관계도 없는 말일까?
<자기만의 방>은 ‘여성과 픽션’에 관한 주제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버지니아 울프의 고민으로부터 시작한다. 울프는 고민 끝에 결국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왜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할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그 시절 여성들은 평균 열세명의 아이를 낳았다. ‘큰 재산을 모으는 한편 열세 명의 아이를 낳는 것 그것은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설사 돈 버는 일이 가능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큰 재산을 가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번 돈을 소유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울프는 어떻게 글을 쓰는 것이 가능했을까? 숙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연금으로 물려준 500파운드의 연금 덕분이었다. 1년에 한번씩 나오는 500파운드의 돈에 울프는 ‘이 세상의 어떤 무력도 나에게서 500파운드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라고 깊은 애착을 보인다. 이 돈이 주는 자유는 굉장한데, 울프는 연금 덕분에 음식과 집, 의복을 갖게 된 것은 물론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났고 누구도 미워할 필요도, 누구에게 아부할 필요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 500파운드의 금액은 어느 정도일까? FRED (Federal Reserve Economic Data) 가 제공하는 계절 조정된 노동자 평균 주급에 따르면(Average Weekly Earnings Per Person in the United Kingdom (AWEPPUKQ) 1928년 노동자의 평균 주급은 약 £2.61/주라고 한다.
이는 연간으로 약 £135.7/년(= £2.61 × 52주)에 해당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500(연간 고정 소득)은 그해 평균 연소득의 약 3.7배 수준. 평균임금노동자의 3~4년치 연봉을 합한 금액이라는 것이다. 픽션을 쓰기 위해 500프랑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울프는 말했는데 우선 500프랑부터 입이 떡 벌어진다. 자기만의 방은 또 얼마나 할까?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16세기에 태어난 위대한 재능을 가진 여성은 틀림없이 미치거나 총으로 자살하거나 또는 마을 변두리의 외딴 오두막에서 절반은 마녀, 절반은 요술쟁이로 공포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 일생을 끝마쳤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18세기에 이르면서 수백 명의 여성들이 번역을 하거나 저질 소설들을 숱하게 씀으로써 용돈을 보태거나 가족을 돕게 되었”다. 실제 여성이 글을 쓰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18세기 말 무렵 울프에 따르면 십자군이나 장미전쟁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겨난다. 즉 중산층 여성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와 조지 엘리엇이 나타난 것이다. 이들에게는 자기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자기만의 시간도 없었고, 자기만의 방도 없었고, 그들은 공동의 거실에서 온갖 종류의 일상적인 방해를 받으며 글을 써야 했다. 또한 너무 가난했기에 <폭풍의 언덕>과 <제인 에어>를 쓸 종이를 한 번에 몇 묶음 이상 살 수 없었고, 샬럿 브론테는 자신의 소설에 대한 저작권을 곧장 1500파운드에 팔아넘겨야 했다.
만약 그녀들에게 울프와 같이 500프랑의 돈이 있었다면, 혹은 그녀들에게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면, 그녀들이 16세기 상류층에 유행했던 그랜드투어를 다녀올 수 있었다면, 그녀들이 활기가 넘치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제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무엇을 쓸 수 있었을까, 울프는 상상해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분통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쓴다.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너무 좋은데 여기서 울프가 말하는 ‘방’은 개념적인 방이 아니라 실제적인 ‘방’이다. 벽이 있고, 문이 있고 문을 닫으면 자기만의 공간이 생기는 그런 ‘방’말이다.
그 시절 자기만의 방이 있기 위해서는 얼마의 돈이 필요했을까? 울프는 블룸즈버리 지역에서 살았다. 1900~1920년대초, 브룸즈버리를 포함한 런던의 일반 방(room) 임대료(rent)를 살펴보면 단순한 방인 single room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지역과 가구비 포함 여부, 난방/조리시설 유무, 층수, 위치 등에 따라 일주일 또는 한 달 단위로 가격 차이가 컸다.
하지만 가장 싼 방, 예컨대, 하위 소득 계층 노동자의 숙소 수준인 간단한 방(single bedroom in lodgings)이라면 한 주(week)에 10 ~ 20 실링(shilling) 정도였을 수 있고, 중간 계층, 조금 더 품질 좋거나 블룸즈버리 같은 중심가라면 한 달(month)에 £2 ~ £5 또는 더 높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자, 숙모에게 500프랑의 연금도 받았겠다. 울프는 결국 자기만의 방을 소유했을까?
울프는 1919년에 몽크스 하우스라는 시골 저택을 경매로 £700에 구입하고 드디어 자기만의 방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무슨 돈으로 그 집을 샀을까?
그 집을 산 1919년은 버지니아와 남편 스티븐이 결혼한 지 7년째 되던 해이다. 몇 해전 그 둘이 낸 각자의 첫 소설은 둘 다 좋은 평을 받았고, T.S.엘리엇의 시집을 출판하면서 출판업자로 피어나고 있었다고 하니 아마도 첫 소설의 인세와 출판업자로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집을 구입할 수 있었으리라. 울프는 1941년 강으로 걸어 들어가 자살할 때까지 이곳에 살았다고 하니, 거의 22년동안 살아온 것이다. 그녀의 남편 레너드 울프는 그녀가 죽은 후 1969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 몽크스 하우스에 남았다.
몽크스 하우스의 정원을 다룬 책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을 보면 울프의 진짜 삶이 보인다. 장래가 창창하긴 하지만 가진 돈을 집을 사는데 몽땅 털어버린 이 젊은 부부는 실제 집에 들어가서 깜짝 놀라고 만다. 첫날밤에 정원에서 계단을 타고 물이 들어왔고 부엌 바닥엔 물기가 스며나왔고, 정원에서는 뚱뚱한 쥐들이 튀어나왔으며, 화장실이 없어서 다락에 양동이를 가져다놓고 그 위에 의자를 놓아서 화장실을 급조했기 때문이다.
첫눈에 반한 집에 세세한 부분은 살펴보지도 않고 들어온 것이다. 젊은 부부는 이후 몇 년 동안 집을 쓸만하게 만들기 위해 애쓴다. 정원에서 잡초를 뽑고 가지를 치면서 다양한 과실나무를 심고, 집 벽을 선명한 색으로 칠한다. 당시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를 보면 글을 써서 300파운드를 멀벌다고, 그래서 그 돈으로 몽크스 하우스에 욕실과 온수 화덕을 설치하겠다고 결심하는 내용이 나온다.
나는 이 책을 보기 전까지 버지니아 울프를 신경쇠약에 걸린 초예민한 여성작가라고만 생각했다. 케인즈와 같이 블룸즈버리 클럽의 일원이고 숙모에게 큰돈을 물려받은 금수저이자 천재적인 여성작가, 하지만 너무 신경쇠약으로 결국 자살하고만 비운의 여성,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성실한 작가이자 씩씩한 생활인이었다.
그녀의 삶은 쓰기라는 노동과 주부로서의 생활과 작가로서의 고뇌로 가득차있다. 특히 나는 그녀의 일기에서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든다.
“<올랜도> 판매가 아주 잘됐어요. (...) 방을 더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답니다.", “돈을 벌면 집에 한 층을 더 올려야지.”, ”기사 네 개를 더 쓰기로 했다. 얼마가 들든 나의 새 방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글들. 자신의 노동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을 만들 수 있고 꾸밀 수 있다는 성취와 근면과 야망으로 가득찬 생활인으로서의 그녀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에서 이렇게 썼다.
“픽션은 거미줄과도 같습니다. (...) 이 거미줄은 육체를 지니지 않은 어떤 존재가 공기 중에 짜놓은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인간이 만든 작품이며, 건강, 돈, 사는 집처럼 지극히 물질적인 것들에 부착되어 있습니다.”(169p)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갖길 원했던 것이리라. 우리의 글은 현실에서 고통받는 인간이 지극히 물질적인 것들 속에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는 그 물질적인 것들 속에서 지극히 세속적이면서도 성실하게 자신의 글을 한줄한줄 쌓아올렸다. 그렇게 자신의 노동으로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나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