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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파란 눈
  • 토니 모리슨
  • 13,500원 (10%750)
  • 2024-07-30
  • : 3,378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아가 강한 이가 아니라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자기계발적 심리서를 통해 전해진다. 또한 누구나 자신의 약점을 내보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품어주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관념도 당연한 듯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사회는 비교 우위로 촘촘하게 계층화되어 있으며, 모든 개인이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낼 용기를 품을 만큼 오롯한 주체라는 생각도 환상일 뿐이다. 


이는 『가장 파란 눈』이 1940년대 전후의 미국 흑인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유다. 토니 모리슨이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페콜라 브리드러브의 삶은 극단적으로 비참하지만, 그의 취약함은 선망과 모방을 동력으로 삼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속에 사는 사람이라면 조금씩 가지고 있는 무언가이다. 그리고 그것이 성장의 단계가 될지,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될지는 보통 외부적 요건에 달려 있다. 


산산이 부서진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는 토니 모리슨의 경고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기 때문일까. 소설을 다 읽고서도 무덤덤한 나 자신에 놀랐다. 아니면 작가의 의도가 통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주인공 소녀를 “적당히 동정하고 말 것”을 우려하며 사건의 순서, 원인과 결과를 복잡하게 배치하여 서서히 망가지는 페콜라의 삶에서 심정적으로 거리를 두고, 이러한 상황에서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연약함에까지 시선을 주게 만든다. 인간 이하로 전락해버린 촐리 브리드러브, 살아갈 방법으로서 황폐한 욕망에 자신을 맡겨버린 폴린 브리드러브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가 강화시킨 자기혐오가 낳은 사랑, 피 흘리는(bleed) 사랑 이야기를 읽는 것만 같은 서글픔을 안긴다.


“사랑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나을 수는 없다. 사악한 사람은 사랑도 사악하게 하고. 난폭한 사람은 사랑도 난폭하게 하고, 허약한 사람은 사랑도 허약하게 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사랑도 어리석게 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의 사랑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p.248)

    

1940년대 오하이오주 로레인. 이 소설의 화자인 클로디아 맥티어는 가난하긴 하지만 일하는 아버지, 가정주부인 어머니를 두고, 자기 집에서 방 하나를 세놓을 만큼 빠듯한 여유를 감내하며 사는 서민층 흑인 가족의 둘째다. 클로디아는 언니 프리다와 늘 함께 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곤 한다. 그런 그의 집에 갈 곳이 없어진 페콜라 브리드러브가 한동안 머문다. 


페콜라는 “말없이, 이름도 없이, 그것을 표현하거나 인정할 목소리도 없이 붕괴하는 사람들”(p.7), “추함을 두 손에 받아들었고, 망토처럼 뒤집어”(p.57)쓰고 다니는 이들로 묘사되는 브리드러브 가족 중 가장 연약한 존재다. 흑인, 그것도 얼굴색이 어두운 흑인 소녀인데다가 극심한 빈곤층이다. 그의 아버지 촐리는 가족을 건사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여기저기를 떠도는 사람이며, 그의 어머니 폴린은 백인 문화를 선망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가정부로서 일하는 백인 가정의 아이를 훨씬 더 극진히 보살피면서 자신들의 아이들은 방치한다. 이러한 가정에서 페콜라는 혐오와 멸시의 시선을 직격으로 맞으며, 조금씩 자존감을 잃어간다. 

     


사람들은 언제 어떤 타인을 존중할까. ‘언제’와 ‘어떤’이라는 조건을 달 수 없다는 것을 현대사회의 문명인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1940년대 남부 흑인들의 대규모 이주 이후 흑인 참정권 및 교육에 대한 권리가 확대되면서 표면적으로는 백인과 흑인의 사회가 섞이는 듯했지만, 이는 흑인성을 버림으로써, 피부를 조금이라도 더 밝은 색으로 만듦으로써, 흑인에게 주어진 일을 말없이 수행하면서 가능한 것이었다. 


반면, 백인 사회의 문화는 융성하여 미대륙 곳곳에 속속들이 영향을 미치는데 이 소설의 제목인 ‘가장 파란 눈’은 이러한 백인성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백인성에 대한 선망이 흑인 사회에 한한 건 아니었겠지만, 이 소설에서 주된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0대 흑인 소녀들은 셜리 템플을 부러워하며, 메리 제인이 그려진 사탕을 사 먹으며 백인 소녀의 구불구불한 금발과 밝은 얼굴을 동경한다. 


그건 페콜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너무 많은 혐오 어린 시선에 상처받은 그는 오히려 백인의 외모, 즉 가장 파란 눈을 동경하기 시작한다. “흑인 여자아이가 백인 여자아이의 파란 눈을 갈망”하기 시작한 순간이 먼저일까, 흑인 여자아이의 무구한 시선을 매몰차게 내친 사람들의 시선이 먼저일까. 언뜻 보기에 페콜라의 붕괴에서 촐리의 강간, 그리고 아이의 유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의 아버지 촐리는 물론이고 어머니, 사탕 가게 주인, 동급생 흑인 남자아이, 부유한 흑인 여자아이, 이유도 없이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중산층 흑인 가족, 소아성애자 소프헤드 처치 등 동네의 모든 사람이 그의 가해자다. 즉, 온 세상이 그를 무너뜨린다. 


그러한 노골적인 혐오 속에서 그는 ‘파란 눈’을 소망하며 “인종적 자기혐오”를 내면화한다. 토니 모리슨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이유로 혐오와 멸시를 받는 느낌. 이러한 시선이 아무렇지 않아졌을 때, 위로와 회복이 불가능할 때, 한 인간에게 어떤 비극이 닥칠 수 있는지를 말하려 했음을 밝힌다.


“그녀는 지금껏 어른 남자의 눈에서 관심과 혐오, 심지어 분노까지 보아왔다. 이 텅 빈 공간이 새롭지는 않다. 거기에는 날카로운 날이 있다. 눈꺼풀 안쪽 어딘가에 불쾌감이 도사리고 있다. (…) 그 불쾌감은 그녀를, 그녀의 검은 피부를 향한 것이 틀림없다.”(p.68)

    

페콜라가 촐리와의 근친 상간으로  생긴 아이를 유산했을 때는 1941년이다. 그는 아이를 밴 상태로 너무 기이한 성격에 자폐적 생활습관으로 오히려 신성함이라는 허울을 입은 소아성애자 '소프헤드 처치'에게 가 파란 눈을 갖게 해달라고 빈다. 소프헤드 처치는 전혀 말이 안 되는 일을 신이 페콜라의 눈을 파랗게 만들어줬다는 증거로 만들어버리고, 페콜라는 말 그대로 미쳐버린다. 


프리다와 클로디아는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페콜라를 안쓰러워하고 자신과 같은 여자아이 그 자체로 본 유일한 흑인이지만 결국 페콜라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고, 심지어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애가 우스꽝스럽거나 혐오스러워서가 아니라, 겁이 나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애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력한 어린아이는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들 때문에 죄책감을 갖게 된다. 어른이 된 후에 클로디아는 이야기한다. "우리가 틀린 것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미 늦었으니까."(249)  


“그녀를 아는 우리 모두는 더러운 것을 전부 그녀에게 쏟아붓고 나서 아주 건전해진 기분이었다. 그녀의 추함을 발아래 두고 당당히 설 때 우리는 참으로 아름다웠다.”(p.246)

  

환대란 때로 거창하게 느껴진다. 그 존재를 받아들이고 곁을 내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어떤 거리낌이나 판단이 없는 환하고 정직한 웃음은 어떨까. 그 미소를 띠는 일이 과연 그렇게나 어려운 일일까. 나는 누군가에게 밝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순간을, 아니 그보다 먼저 그 환한 웃음을 받는 순간들을 강렬하게 경험한다. 이 소설에서 빈곤, 인종 문제는 너무나도 중요하고 계속 논의되어야 할 주제이지만, 그것보다도 더 눈에 밟힌 것은 페콜라를 향했던 무수한 시선이었다. ‘텅 빈’ 시선, “표정이 지워진 눈빛”(p.228) 같은 것들. 


동성의 연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일말의 사회적 취약성을 지닌 나 역시 어느 한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맞닥뜨린 싸늘한 시선에 나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시선은 조금씩 사람을 바꾸어놓는다. 우리는 우리 앞의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볼 수 있는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 우리를 볼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감사함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잔인한, 내가 어떻게 피할 수도 없고 되받아칠 수도 없는 화살이 된다. 지금, 세계는 내가 당신의 거울이 되고 당신은 나의 거울이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지는 시대다. 그런 공기 속에서 만난  『가장 파란 눈』은 이 세상에서 나의 눈은 어떤 색을 보고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공감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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