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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여행
  •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빌 브라이슨
  • 12,420원 (10%690)
  • 2008-04-30
  • : 12,619

빌 브라이슨이 유럽을 여행했다. 아니 산책했다. 말 그대로 산책이다. 그 말은 다른 여행 가이드나 여행 서적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사실 발칙하다는 표현은 다른 여행기와 비교해서 발칙하다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별반 발칙할 건 없다.  

나는 여행기를 잘 읽지 않는다. 그 고장의 유명한 볼 거리, 견학할 곳을 사진 쾅쾅 박아대며 설명하고 그곳에서 겪은 고생이나 에피소드 좀 늘어놓고, 음식점 소개하고, 친구 사귄 이야기 해주고. 이 정도면 일반적인 여행기의 대강이 아닐까? 

이 책은 좀 다르다. 일단 사진이 없다. (여행기의 절반은 사진이 아니던가!) 사진이 없어서 처음엔 좀 실망스러웠지만, 다 읽고 나서는 사진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다. 저자의 솔직함 때문일까. 저자는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간다. 대충 찾아간다. 가서 묻고 고생하며. 가서도 역이나 터미널 주변 좀 돌아보다 숙소 마련해서는 숙소 주변에서 산책하고 근처 구경 좀 하고 만다. 오로라를 보러 가서는 추위 속에 고생만 실컷 하다 결국 마지막에 살짝쿵 오로라 맛만 본다. 그럼에도 왜 이 책은 기억에 남고 오래 그 맛이 잊혀지지 않는 걸까. 생각해 보면 여행하는 자의 느긋함과 솔직함 때문이 아닐까. 이 여행자(저자)는 여행지를 맛보고 느끼고 체득한다. 일정과 봐야할 것의 목록에 쫓기지 않는다. 그러니 글에서도 소개해야 할 것의 목록을 글이 따라가느라 헉헉대는 일이 없다. 읽는 이 역시 느긋하게 그리고 신산스럽게('객수'란 기행문의 필수 요소가 아닌가!) 여행을 느끼고 즐길 수 있다. 여행 준비용 책으로는 영 아니겠지만 삶의 활력소로는 제격인 책이다. 

하나 더 이 책의 특징을 들자면 감동이 없다는 점이다. 휴머니티, 인간애, 연민과 동정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다. 벌어 놓은 돈을 써서 여행을 함으로써 좀더 많은 것을 느끼고 즐기고 싶지만 모든 게 뜻대로 되지는 않고, 그러나 그런 뜻대로 되지 않는 과정 자체가 인생의 일부이자 공부가 되는, 그런 이기적인(따라서 정상적인) 현대인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인간애가 아니면 명품이나 명성을 좇는 다른 책들과는 달리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지적인 성장을 추구하려 발버둥질 몇 번 쳐보는 모습의 책이랄까. 

사족. 이 책이 마음에 든 이유는 어쩌면 나 역시 저자처럼 적당히 대충 보고 밥 먹고 다녀오는 여행을 즐기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계획 짜서 이곳저곳 다니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기야 한량없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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