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블랙모어의 <밈>(바다출판사, 2010)은 '10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아놓기도 했는데, 리뷰기사를 미리 참조해보는 것도 좋겠다. 저자의 최근 관심사도 전해주고 있어서 요긴하다.


한국일보(10. 10. 02) 인간의 자아는 없다, 밈 복제의 기계일 뿐…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1976)는 인간은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는 도발적인 주장으로 파란을 일으킨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문화의 진화를 이끈 새로운 복제자로 '밈(mem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밈은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미메메(mimeme)'를 생물학적 유전자 '진(gene)'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변형시킨 말이다. 밈은 모방을 통해 전달된다.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밈은 인간을 도구 삼아 문화를 창조하는 복제자다.

영국 심리학자 수전 블랙모어의 <밈>은 도킨스의 가설을 더 멀리 끌고 나간다. "우리의 자아는 귀중한 영혼이 아니라 들의 집합일 뿐"이고, "인간과 다른 동물종들을 구별짓는 것은 지능이 아니라 우리의 모방 능력"이며, 인간은 '밈 머신'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마음과 자아는 밈들의 상호작용으로 탄생한 것이고, 따라서 본래 자유의지나 자아가 있다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류 역사에서 첫번째 복제자는 유전자다. 밈은 두 번째 복제자로, 250만년 전쯤 전 우리가 서로 모방하기 시작한 순간 탄생했다. 밈은 모방을 통해 끊임없이 복제되면서 세력을 키워간다. 인간이 큰 뇌를 갖게 된 것이나 언어의 발달도 밈이 조종한 결과다. 새 밈을 더 잘 퍼뜨리기 위해 이 유전자에게 자연선택의 압력을 가했고, 밈과 유전자가 이렇게 공진화한 결과 인간이 큰 뇌와 언어를 지닌 특이한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밈 이론에 따르면 문화는 인간이 발전시킨 것이 아니다. 오로지 밈이 자신을 위해서 인간을 도구 삼아 끊임없이 전파, 확산되면서 지금의 문화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인간 문화의 창조적 업적은 모두 밈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현대의 성적 행위를 이끌어가는 것도 밈이라고 주장한다. 섹스는 밈을 마음껏 확산하고 통제하고 조작하게 해주는 기회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타적 행동도 밈으로 설명한다. 밈은 무심하고 이기적이지만, 이타적인 사람은 인기가 있어서 남들에게 많이 모방되기 때문에 결국 그의 밈이 다른 사람의 밈보다 더 멀리 퍼진다는 것이다.
이 책의 원서는 월드와이드웹 초창기인 1999년 나왔다. 따라서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수평적 모방이 대유행하는 요즘 현실은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저자 블랙모어는 최근 웹과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세상의 새로운 에 관심을 쏟고 있다. 유전자, 밈에 이은 이 제 3의 복제자를 그는 '기술적인 밈'이라는 뜻에서 '팀(temeㆍ technological meme)'이라고 부른다.
지난 8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인간이 '밈 머신'에서 '팀 머신'으로 바뀔 가능성을 언급했다. 인터넷을 인간이 설계했으니 인간이 주인인 것 같지만, 실은 기술적 알고리즘이 자기복제와 확산을 거듭하며 인간을 조종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묻고 있다. 그의 다음 책은 아마도 '팀 이론'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자아는 망상일 뿐이고 자유의지라는 것은 없으며, 밈이 인간을 도구로 자기를 복제하고 확산할 뿐이라는 이런 주장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오래된 믿음들을 마구 뒤흔든다. 밈 이론은 아직까지 논쟁의 와중에 있는 가설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오미환기자)
10. 10.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