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완서(1931-2011) 아카이브전에 다녀왔다(정확히는 박완서 아카이브 조성 기념전이겠다. 80년의 생애, 40년의 작가로서의 삶이 이번에 온전하게 아카이브화 되었다. 선례가 있던가? 국외에서 가본 곳으로는 아직 생존작가이지만 일본 와세다대학의 하루키 라이브러리, 체코 브루노의 쿤데라 라이브러리를 떠올렸다). 지난 2월9일부터 시작된 전시는 이달 30일에 종료된다. 종료를 3일 남겨놓고 찾은 셈. 끝무렵이어서 관람객이 많지는 않았다. 일행과 여유있게 둘러보고 오랜만에 학교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재작년말 김윤식전에 이어서 서울대에서의 작가전은 두번째로 찾은 것인데 두분은 서울대 동문으로서(각각 50학번, 55학번이다), 또 작가와 평론가로서 가깝게 지낸 인연이 있다(나는 20년쯤 전에 한 연말 시상식장에서 두 분이 함께 자리한 걸 본 기억이 있다). 전시에는 두 분이 찍은 사진(여행지에서, 그리고 서울대 교정에서)과 사신 들도 진열돼 있었다. 다른 자료들은 보통의 작가문학관이 갖춰놓음직한 것들이었는데, 선생의 서재를 정원까지 옮겨놀은 것이 특기할 만했다. 더불어 매우 성대했을 성싶은 결혼식의 동영상도 눈에 띄었다. 1953년 4월(아직 종전도 되기 전이다) 예식장이 아닌 중국집에서 치러졌다는 결혼식은 생각보다 ‘호화판‘이었다.
‘세계 속의 박완서 문학‘이란 코너도 눈길을 끌었는데 현재까지 약 93권의 책이 외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25개국 20개 언어권이다). 이 정도면 한국작가로는 ‘최다‘를 다투지 않을까 싶다. 번역본을이 전시장의 벽면 하나를 채울 정도여서 인상적이었다. 가장 많이 번역된 작품은 <나목>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같은 자전소설들이었다. 한 개인의 자서전이자 한국적 삶의 정밀한 기록으로 읽히는 것이리라.
전시의 마무리는 모빌로 설치된 작가의 일기들이었다. 상당 분량의 육필 일기에서 뽑은 문장들이 작가의 육성을(우리 귀에 익은 육성이다) 고스란히 들려주고 있었다. 그중 하나를 여기에 옮긴다. 1970년 전작 장편소설(나목)로 등장한 한 작가, 그리고 그의 충실한 한 독자와의 만남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한국현대문학‘이라는 앨범이 있다면 자리를 마련해 꽂아두고 싶다.
˝세계사에서 도서전시회 때 사인회 하라는 걸 사양했더니 사인은 집에서 해주고, 전시장에 나와서 독자들과 사진 찍기라도 해달라고 해서 그러기로 한 날. 두 시경 이경호 군이 데리러 와서 사인한 책(한 말씀만 하소서) 100권 하고 같이 무역회관 전시장으로. VIP room에서 30분가량 쉬었다가 세계사 부스에 줄 선 독자(주로 학생들) 7~8명씩 사진 찍다. 그 후 좀 감동스러운 일이 있었다. 아침에 전주에서 상경했다는 60대 남자가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나목(裸木) 초판본을 내놓으며 싸인해 달라고, 뒷장엔 8번을 읽었다는 날짜까지 써 있었다. 감동 먹고 6권짜리 선집 선물. 이런 독자 때문에 글 쓸 용기도 나고 글 쓸 일이 두렵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