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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저공비행
칼 세이건(1934-1996)의 <코스모스>(1980)를 강의에서 읽는다(그러고 보니 올해가 세이건 사후 30주년이다. 관련한 책이 나올 수도 있겠다).45년 전에 나온 학원사판(1981)으로 처음 읽었던 것 같다. 두툼한 책을 다 읽진 못하고 독후감을 썼던 기억이 있다. 후에 나온 사이언스북스판(2004년)을 갖고 있지만 이번에 강의차 새로 구입했다. 올 2월말에 찍은 121쇄다. 여전히 과학베스트셀러로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기야 1980년 출간 이후 전세계적으로 4000만부 이상 판매된 걸로 추정되는, 교양과학서 최대 베스트셀러다.

강의에선, 3회에 걸쳐 나눠서 읽기에 전13장 중 4장까지 먼저 읽고자 했으나 오늘 강의는 2장을 읽던 중에 끝났다. 아무래도 칼 세이건의 생애와 <코스모스> 출간의 의의 등 다뤄야 할 아이템이 많아서 예견했던 바다. 홍승수판으로는 처음 읽는 셈인데 대부분의 문장이 무난하게 읽힌다. 그럼에도 앤 드루얀에게 바치는 헌사를 포함해 몇 문장은 오역이거나 부정확한 번역이어서 께름직했다. 121쇄를 찍도록 교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놀랍다.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약 600년 동안 인류를 우주의 바다로 이끈 지적 모험을 잉태하고 양육한 곳이다. 그러나 그 대리석 도시의 위용과 영광의 흔적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피지배층이 느꼈던 배움에 대한 두려움과 그들이 겪어야 했었던 지배층으로부터의 억압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로 옛 알렉산드리아의 영광은 대중의 기억에서 거의 완전히 지워지고 말았다. 

알렉산드리아에는 지극히 다양한 사람들이 살았다. 번성 초기에는 마케도니아 병사가, 좀후대에 와서는 로마의 병사들이 우글댔다. 알렉산드리아의 전성기에는 이집트의 사제, 그리스의 귀족, 페니키아 선원, 유대인 상인, 인도와 사하라 사막 남쪽의 지방에서 온 아프리카 방문객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노예 계층의 막대한 인구를 제외하고 대체적으로 같이 어울리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살았다.˝(55쪽)

1장에서 알렉산드리아에 대해 언급한 부분(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학자들 얘기로 넘어간다). 세번째 문장의 원문은 이렇다.

˝Oppression and the fear of learning have obliterated almost all memory of ancient Alexandria.˝

˝피지배층이 느꼈던 배움에 대한 두려움과 그들이 겪어야 했었던 지배층으로부터의 억압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로 옛 알렉산드리아의 영광은 대중의 기억에서 거의 완전히 지워지고 말았다.˝

당장의 비교에서 알 수 있지만, 짧은 원문을 길게 풀어서 옮겼는데(상당한 의역이다) 애꿎게도 뜻은 정반대가 되었다. ‘억압‘과 ‘두려움‘의 주체를 잘못 보았기 때문에 빚어진 오역이다. 번역은 억압의 주체(지배층)와 두려움의 주체(피지배층)를 분리했는데, 원문에 의해 지지되지 않을 뿐더러 역사적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직역하면 ˝권력의 억압과 배움에 대한 공포가 고대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거의 모든 기억을 말살해버렸다.”가 될 텐데, 여기서 억압은 권력의 억압일 터이고 공포는 피지배층의 배움에 대한 지배층의 공포일 것이다.(기록에 따르면 잦은 내전과 화재, 종교적 불관용이 도서관 파괴의 원인이었다).

고대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세이건의 이어지는 서술은 길지 않으면서도 예리하며 음미해볼 만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우리가 잃어버린 건 도서관만이 아니다. 그 도서관을 낳은 도시, 하나의 세계, 하나의 문명이다. 석기시대 운운하며 야만적 권력이 폭주하는 즈음에 다시금 ‘사라진 도서관‘을 애도한다. 알렉산드리아에 새로 건립됐다는 도서관도 언젠가 들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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