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학기행을 무탈하게 종료했다. 국내 문학기행으론 두번째, 당일치기 일정으로는 첫 시도였다. 참가인원이 많은 편이었지만 서울 도심을 주로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어서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다만 박태원과 이상, 박인환, 거기에 윤동주 등에 관한 연구자료가 너무 많아서(김기림과 염상섭에 대해서도 몇마디) 준비부담은 큰 편이었다. 덕분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꼼꼼히 재독하고 주인공 구보의 동선을 확인하는 성과는 거두었다(프라자호텔 인근에 있었던 낙랑파라가 ‘다방‘으로 지칭되는데 구보는 ‘일일‘ 동안 그곳을 세차례나 방문한다. 일직선의 동선이 아니라 맴을 도는 것 같은 동선인 것).
공간에 대한 건축가의 고심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공통적인(교토문학기행에서는 오사카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시바 료타로 기념관이 그런 곳이었다) 이상의 집과 윤동주문학관에서는 해설사가 두 시인의 생애에 대한 설명을 해주어서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윤동주 생애에 대한 영상도 맞춤하게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의미 있는 자료가 적다는 불만을 어디선가 읽었는데 연대에 윤동주기념관이 또 있는 만큼 이 정도로도 문학관의 역할은 충분해보인다. 다만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는 게 다소 아쉬웠다.
윤동주와 관련해서는 김응교 교수의 <윤동주>와 이남호 교수가 엮은 시집 <별 헤는 밤>을 가방에 넣어갔는데 <별 헤는 밤>만 잠시 꺼내볼 수 있었다(결국 문학기행에 챙겨가는 책들은 독서용이 아니라 의례용이다). 윤동주에 관한 짧은 강의에서 ‘자화상‘과 ‘참회록‘, 그리고 ‘쉽게 씌어진 시‘ 등을 언급했다. 정리하려고 다시 펼친 시집에서 ‘사랑스런 추억‘을 읽는다. 자료를 보니 1942년 5월 13일에 일본 도쿄에서 쓴 시다. 당시는 릿쿄대 재학 시기(‘쉽게 씌어진 시‘가 6월에 쓰인다). 가을 학기에 윤동주는 교토의 도시샤대학으로 옮겨가게 된다(이 두 대학 교정에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시여서 오랜만에 재회하는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윤동주 시집을 통독한 건 대학 1학년, 스무살이 되기 전이었다. 노트 몇 장 분량의 윤동주론을 작성했는데, 나로선 처음 써본 시인론이기도 했다. 한 여학생(고등학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정작 보여주었는지, 무슨 평을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세월이 가면 과거도 잊혀지곤 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인지. 스물다섯의 시인이 쓴 시를 쉰이 훌쩍 넘은 나이가 되어 다시 읽으며 나는 다른 말을 보태지 못하겠다. 젊은 시인이 더 젊었던 시절을 두고 한 말을 반복할 밖에.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 ―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P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