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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저공비행
교토문학기행의 마지막 일정은 대표 관광지이자 사적지 아라시야마 방문이었다. 야마가 ‘산‘을 뜻한다고 하니 아라시산이 되겠다. 산만 있는 것 아니고 산과 강, 거기에 죽림(대숲)까지 더해져서 관광지로서는 토털패키지 같다. 당연하게도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찾는 듯해서 관광 성수기가 아님에도 인파가 많았다(성수기에 와본 분은 인파에 떠다녔다고 한다). 고명한 사찰인 텐류지(천룡사)와 죽림, 도게츠교(도월교) 등을 둘러보는 것으로도 한나절은 충분히 보낼 수 있을 듯했다.

문학기행 일정에 넣은 것은 거기에 더하여 일본 하이쿠의 대명사, 마츠오 바쇼의 자취가 남아 있어서다. 흙벽에 초가지붕을 얹은 라쿠시샤라는 암자가 있는데 바쇼의 수제자 무카이 교라이 세웠다는 은둔처다. 스승 바쇼가 여러 번 찾았다고 하고 마당에는 바쇼의 시를 새긴 바위가 들어서 있다. 찾아보니 이런 내용이다.

五月雨や 色紙へぎたる 壁の跡
​사미다레야 시키시 헤기타루 카베노아토

장마비여,
색지가 뜯겨 나간
벽의 흔적이여

여름 장마에 찾았다면 더 느낌이 생생했을 듯싶다. 라쿠시샤의 직원이 사정으로 12시에 문을 연다 하여, 텐류지와 죽림을 지나온 일행은 문앞에서 대기하며 잠시 시간을 보냈는데, 바쇼의 하이쿠가 갖는 특징(서정과 반서정의 배합)과 서정시의 역사, 현대 모더니즘 시(특히 에즈라 파운드와 T.S. 엘리엇)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짧은 강의를 진행했다. 따져보면 어제 찾은 금각사의 미시마와 바쇼는 거의 대척적인 관계라고 해도 무방하다.

바쇼의 반서정과 대립하는 서정시인으로 이시카와 다쿠보쿠(1886-1912)나 요사노 아키코(1847-1942) 등을 꼽는다면 대척관계는 다소 복잡해진다. 서정성이 감정의 숭배(일반적인 서정시)를 넘어서 자기 숭배(미시마의 사례)로 나아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귀족주의적 세계인식과 무사도(사무라이)적 미학의 결합으로 보이는 미시마의 문학은 의지의 문학으로서 반서정에 맞서지만 동시에 서정주의적 사소성도 적대한다. 바쇼의 시비를 보면서, 서정과 반서정의 구도로 일본근대문학의 좌표계를 어떻게 재설정할지 어림해보았다.

문학기행은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새로운 질문으로 이끈다.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여행, 간사이국제공항에서 귀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나는 벌써 또다른 문학기행으로 마음을 돌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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