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로쟈의 저공비행
담주 동유럽(체코-폴란드) 문학기행을 앞두고 가방을 챙기는 중이다. 책도 고르는 중인데 폴란드를 대표하는 시인(또다른 대표시인 체스와프 미워시는 제대로 번역본이 나오지 않아 살펴보지 못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쉼보르스카의 책으론 별다른 경합 없이 <끝과 시작>(사실 두 종의 판본이 있어서 무게를 저울질해보고 리커버판을 골랐다). 폴란드문학 강의에선 봄에 읽게 될 예정이지만 그전에 시집은 나와 함께 바르샤바 바람을, 아니 쉼보르스카니까 크라쿠프의 바람을 쐬고 돌아올 것이다. 시집 서두에 놓인 제목이 없는 시를 옮긴다(아마도 20대 초반에 쓴 것 같다). 1연과 3연의 반복과 대립이 시의 핵심이겠다...

한때 우리는 닥치는 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때 세상은서로 꼭 맞잡은 두 손에 들어갈 수 있으리만치 작았다,
웃으면서 묘사할 수 있을 만큼 간단했다,
기도문에 나오는 해묵은 진실의 메아리처럼 평범했다.

역사는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지 못하고,
더러운 먼지를 내뿜어 우리 눈을 속였다.
우리 앞에는 칠흑처럼 어둡고 머나먼 길과
죄악으로 오염된 우물, 쓰디쓴 빵 조각만 남았을 뿐.

전쟁으로 얻은 우리의 전리품, 그건 세상에 대한 깨달음, 세상은서로 꼭 맞잡은 두 손에 들어갈 수 있으리만치 크다는 것,
웃으면서 묘사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하다는 것,
기도문에 나오는 해묵은 진실의 메아리처럼 특별하다는 것.- P11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