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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고을
 

고등학교 때 읽었으니 13년만인가?

당시 친구가 이 책을 건네주었을 땐 친구에 대한 의무로, 또 동경해마지 않던 친구에 대한 열등감도 조금은 작용하여.... 책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좋긴 한데 그저 그랬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남들이 하도 이 책을 좋은 책으로 순위매기는 것에 대해 조금은 껄쩍지근함을 느끼며 언제고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하던 차에 별 계기도 없이 사서 읽게 되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읽어내지 못한 것들이 무엇이었던가에 매달리며 첫 장을 펼친 나는 여전이 반은 의무감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100쪽이 채 못 되어 꽤 흥미가 생기는 부분을 발견했다.




… 하지만 오빠는 좋은 본보기는 아니었다. 인간이 교안해낸 어떤 개인 교수 제도도 오빠가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로 말하면 내가 아는 지식이란 고작 『타임』지에서 읽은 것과 손에 잡히는 대로 집에서 읽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단조로운 메이콤 군의 교육 제도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동안, 나는 뭔가 사취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 지루한 12년의 학교 과정이 바로 주 정부가 나를 위해 계획한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66쪽




하하하. 그래 맞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공교육에 복무하고 있는 현재로서 항상 딜레마를 느낄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만.....

스카웃과 캐롤라인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학교가 가하는 ‘폭력’,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수법’이라는 이름으로 가하는 폭력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교육에 대한 나름의 신념을 가진 열정적인 교사가 폭력적일 수도 있음에 대해서도. 그러면서 교육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아니, 기술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에 대한 신뢰와 솔직함(정직)을 보여주는 것. 부족하다면 부족함을 인정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특히 스카웃의 아빠를 보면서. 그는 이상적인 부모이자 벗이자, 선생이었다. 그처럼 누구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고 긍정적인 태도로 상대를 존중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양심에 따라 살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것을 어린 아들딸과 솔직하게 함께 나눌 수 있는 부모는 더욱 드물 것이다.




한 번 관심이 생기니까 13년 전 활자로만 읽어 넘겨버린 것이 미안하기 그지없고....




“아빠, 우리가 이기게 될까요?”

“아니.”

“그렇다면 왜----.”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도 해보지 않고 이기려는 노력조차 포기해버릴 까닭은 없어,” -147쪽




그래, 우리가 늘상 ‘투쟁’을 외치고 살만 그것이 꼭 승리로 이어지란 법은 없지. 설령 번번이 패한다 해도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부분에서 스카웃의 아빠가 스카웃에게 한 조언.

‘주먹으로 싸우지 말고 머리로 싸우라는 말’ 더구나 이 싸움은 친구들과 싸우는 거라는 말. 그 싸움이 아무리 치열하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 친구들이고, 이곳은 여전히 우리 고향이라는 말.

그것은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잘 흥분하곤 하는 더구나 요즘은 그것이 거친 말과 행동으로 나타날 때도 있는 나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이기도 했고, 전교조의 싸움 방식에 대한 조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여름이 오면 너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에 대해 이성을 지켜야 할 거야… 너랑 젬에게 부당하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단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할 때가 있어.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느냐 하는 건- 글쎄,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너와 젬이 커서 어른이 되면 어쩌면 연민을 느끼면서, 내가 너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이 문제를 되돌아보게 될 거야. 이 사건, 톰 로빈슨 사건은 말이다. 아주 중요한 한 인간의 양심과 관계있는 문제야. - 스카웃,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어.”

“아빠, 아빠가 틀리셨는지도 모르잖아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글쎄,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옳고 아빠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줘야 돼.”

아빠가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200쪽




역시 핀치 변호사는 이상적이야. 하지만 그것이 작품 속의 그를 존경하게 만들지. 그리고 이만큼 분명한 지침이 또 있겠는가? 내가 하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그 누구보다 내 양심이 답해주고 있음을... 그러나 그 양심을 따라 사는 일, 아니 그 양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은 쉽게 되는 것이 아니란 건 분명하다.

아~~ ‘양심에 털 난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







“…- 손에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 생각을 갖는 대신에, 참으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배우길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새로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낼 때 바로 용기가 있는 거다. 승리란 드문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지 …   -214쪽




그렇겠지.... 




아빠는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이야기보다는 상대방이 관심 있어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의 바른 태도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290쪽




아이쿠. 이건 내게 하는 말이지 싶다. 깊이 새겨두고 있어야 할.







아빠가 정말 옳았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다. 래들리 아저씨네 집 현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525쪽




역시 옳으신 말씀.







이것 외에도 스카웃이 학교에서 ‘시사문제’를 공부할 때 교사가 보인 태도를 지적했을 때, 즉 히틀러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교사가 같은 나라의 흑인(결국은 같은 사람인)에 대해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지적했을 때- 그것이 우리가 보이는 수많은 이중적인 잣대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영민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스카웃만큼 순수하지 못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우리도 ‘펴언겨언’이라는 것에 따르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일단 교육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문제를 던져준 것도 의미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에 대핸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또 모든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이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치 있는 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준다.




지금 앵무새를 죽이고 있는 건 아닌지, 어떤 편견 속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크.... 앵무새는 멀리 있지 않다. 대한민국은 너무도 많은 앵무새를 죽이고 있어... )







‘누군가 짊어진 짐을 알지 못하고서 그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는 격언이 새삼 떠오른다.

그리고

‘편안하게 살려면 세상을 외면하고, 당당하게 살려면 세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는 말도(프란시스코 페레가 한 말이었던가?)




음....

아주 개인적으로는 소소한 삶의 자세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좀더 나아가서는 교사로서, 혹은 교육노동자로서 나의 태도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생각이 깊어지지는 못했다.

아마 이래서 독서모임이 필요한 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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