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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유혹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그야말로 밥벌이를 하느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회사에 다닌 적이 있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무척 적응하기 힘들었다. 직장 동료들과도 뭔가 어긋났으며 일도 재미없었다.(물론 나중에는 다 회복이 되었지만..)


어쨌든 다니기는 싫고, 그렇다고 안 다닐 수도 없는 황당한 상황에서, 나는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때 내 손에 든 것이 바로 이 <닥터 지바고>였다.(내가 읽은 건 안정효 번역이었다.) 왕복 두 시간의 지하철 공간에서 나는 과감히 이 책을 선택한 것이다. 


왜 한 번은 읽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좀체 손에 쥐어지지 않는 책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내겐 <닥터 지바고>가 그랬다. 왠지 만연체가 주종일 것 같은 러시아 문학도 낯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뤄지지 않을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 등등이 이 작품에 대한 나의 오랜 선입견이었다.


 불행히도 내 선입견은 들어맞았다.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런 것들... 하지만 거기까지만 맞았을 뿐, 나는 이 지루하고 묵직한 이야기에 한없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 황량한 마음은 라라와 함께 시베리아 벌판을 달렸고 세상에 대한 적대적인 긴장을 깊은 침묵 속에서 지바고에게 토로하였다.


 특히나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풍부한 묘사들... 그것은 단순히 사물을 표현하기 위한, 말하자면 문청들이 끄적대는 묘사를 위한 묘사 따위가 아니었다.


그 대상을 보는 사람의 심리와 현실적 상황을 문자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럴 수 없이 적확하면서 세세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문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마치 내가 그 사람이 되는 듯하고,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하고 나의 오랜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그야말로 오롯한 문학의 향연에 흠뻠 빠질 수 있었고 출퇴근 내내 우산도 없이 문학의 장대비를 맞으면서 다녀야 했다. 내 독서 경험이 일천해서이겠지만 이런 경험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점차 회복이 되었다. 무엇으로부터 회복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시베리아에는 결코 차가운 북풍과 눈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지하철의 인파들 사이로 나는 언뜻언뜻 서로를 스쳐가는 지바고와 라라를 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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