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재석, 진정한 어른을 만나다.
빠른 흡입력으로 재석이의 일상이 휘리릭- 지나간다. 책을 펼쳐든 순간부터 내려놓는 순간까지 3시간 동안 후루룩 읽혀지는 책. 까칠한 고딩 재석이의 고민과 삶, 전개속도도 그만큼 지루하지 않게 빠르게 해결된다. 얼짱 보담이와의 만남, 우연일까 싶지만 결코 우연임이 아닌 설정. 동화같은 설정, 드라마 같은 설정 또한 청소년들에게 재미있게 읽히게 될 것 같다.
나 또한 청소년기에 깊은 방황과 삶의 방향을 곧게 정해놓지 못해서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 이렇다 할 삶의 방향을 못 잡고 있는 실정이다. 그럴 때 누구나가 어른(?), 무한한 멘토의 존재인 어른을 찾기 마련이다. 책에서 구하든, 실제 삶 속에 만나는 인물로서 멘토를 찾든. 아마도 재석에게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는 이 책에 등장하는 부라퀴 할아버지 일 듯.
어디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느라 한 참 서 있다보면 고딩들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울 정도다. 침을 잇사이로 틱틱 끊임없이 뱉으며 입엔 걸레를 물었는지 나오는 소리들은 죄다 우리말로 옮기기조차 버거울 정도다. 아이들이 내뱉는 일상어가 참으로 까치르르한데, 이를 이젠 평범한 그네들의 문화인양, 그들의 말투인양 치부되고 마는 결론에 이를 땐 순간 섬뜩해진다. 어른의 임무는 그게 아닐진데.... 식물과 물에 좋은 말과 정서상의 기쁜 말을 들려주었을 때와 아닐 때 물의 결정이 다르고 식물이 반응하는 것조차 달라진다는데 그걸 그대로 사람에게도 견주어 본다면 필시 똑같은 결론이 나올텐데 그 문제를 이젠 단순 “그네들의 평벙한 일상의 단어다”라고 결론 지을 수 있을까. 신조어쯤 된다는 식의 생각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부라퀴 할아버지는 재석이가 반하게 되는 보담이의 할아버지다. 또한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으로 자신이 몸소 강인한 의지(의수, 의족을 낀 장애인 노인은 필시 고정욱 작가를 투영한 어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굳이 그 장애를 언급하지 않아도 대단한 의지와 사고를 지닌 노인이다.)를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교화시키고 깨닫게 하는 매력을 지닌 노인인 것이다. 그래서 평정심으로 조용히 그저 그 자리에서 묵묵히 행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삶으로써 보여주기도 하고, 실제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의 삶에 도움을 주고자 쓴소리도 쿨하며 강하게 언지할 수 있는 어른인 것이다. 그리고 보담이는 재석에게 있어서 가장 큰 어르신인 부라퀴 할아버지의 손녀로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지게 하는데 큰 공로를 세우는 아이다. 이 아이 또한 부라퀴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인해 변화되었고, 그가 변화되며 읽은 책 이야기로 까칠한 재석이도 삶에 목표를 갖고 꿈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요즘, 까칠한 아이들은 많지만, 미래를 위해, ‘꿈’이라는 단어를 꿈조차 꾸지 않는 청소년들은 많지 않은 듯. 비단, 청소년들만이 아닌, 청년층까지도 위태위태한 걸음을 걷고 있는 듯 한데, 어른을 만나보고 싶다면 까칠한 재석이를 사라지게 한 부라퀴 할아버지를 만나볼 것. 그리고 보담이도 만나볼 것. 이 시대에는 애써 지도가 필요함을 눈을 질끈 감고 못 본척 지나치는 어른도 많지만, 반대로 애써 따끔한 가르침과 훈육에 나서는 어른도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젊은 날을 방황한 죄”값을 치른 빠삐용처럼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 그리고 읽다보니 [Second hand loins 세컨 핸드 라이온스] 영화가 생각났다. 그 영화 속에서도 진정 멋진 삶을 살았던 두 노인이 나온다. 이 영화 또한 같이 청소년들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