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2009년 올해 읽은 첫, 첫 시집 이병률의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첫' 이라는 詩도 있기에, 나도 한번 시적여보고 싶어서 제목을 이렇게 달아봤다.
물론, 그러한 질투느낌의 시로 이 시집을 읽은 건 아닌,
시집 읽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무언가의 공허함에서,
무언가의 결핍에서, 위로를 받고자 읽거나 자신의 고요함을 읽고 싶거나 할 때.
그런데 시집을 읽다보면 시를 쓰는 것도 그렇게 시작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냥 내 느낌.
사실, 이 시집은 모 시인의 다른 시집을 도서관에서 빌리러 갔다가 그 시집이 없어서 단순, 제목과 시인의 인지도에 끌려 들게 된 시집이었다.
한 마디로 첫,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시집. 그런데 다행이다.
만약 모 시인의 시집을 빌리러 갔다가 빌리려 했던 그 시집이 있었더라면 나의 2009년 읽은 첫 시집의 제목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될 뻔 했으니. 풋! 그냥 우습다.
제목 하나에 이렇게 갈릴 운명이 있단 말인가, 시집이란 것이?
별거 아닌 서점간의 프로모션으로? 새해를 열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손이 닿게 할 것인가에 내가 걸려들 뻔 한건 또 아닐까? 대형 서점을 빙빙 돌며 신간도 아닌 시집이 다시 판매대열에 올려진 최영미시집을 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대를 거론했다거나, 새해가 되면서 무언가 목표의식을 느끼게 해준다거나 하는 장르의 책들이 모두 선전할 때, 시집도 예외가 없었던 모양이다.
시인 이병률이 지었던, [끌림]을 작년에 읽었던 터라 도서관에서 이 시집에 '끌렸'던가 보다. 그 책 읽음이 이렇게 사소한데서 발휘될 줄이야. 그 시인도 독자인 나도 몰랐을 터. 그런데 자꾸 상관없는 서평쓰기에 거론되는 '사건'이 되는 순간.
자꾸 어딘가로 가려고 하는 나의 뭉근한 속바람을 읽었던 것일까? 본능이..
하지만 읽다보면 외로워지고 외로워지는 깊숙한 무언감.
<전갈傳喝>을 읽다가는 수업을 머얼리 인천까지 다니면서 들었던 올 겨울 마지막 전철 타던 그때가 떠오르게 했다. 오산에서 인천까지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2시간의 걸쳐 다녔던 수업. 난, 천안행 마지막 열차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반대편 인천라인에서 거나하게 취한 승객이 비틀거리며 일이 늦게 끝나고 머얼리까지 가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전철이 일찍 끊겨버리면 어려운 사람들은 어떻게 돌아가라고 이러는 거냐고 고래 고래 텅빈 전철레일에 대고 소리치셨다. 주변에 서 있던 몇 몇 분들은 살짜쿵 거리를 넓혀주시고 반대편에 섰던 우리쪽 사람들도 전부 그 아저씨를 바라봤다. 그래도 거칠게 푸념하는 아저씨를 보니 미소가 지어졌다. 왠지 푸념거리라도 소리칠 수 있는, 세상에 분풀이를 해도 들어줄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왠지 그렇게 푸념을 하면 들어줄 세상이 될까 싶어서.
비록 노조파업으로 지하철운행간격이 엉켜있을 당시였지만, 늦게까지 있는 그 전철시간에 감사하며 다닐 때였다. 모두가 이른 귀가를 서두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늦게 일을 해야 하는 사회도 아니요, 멀리까지 무언갈 배우러 다녀야 함도, 머얼리까지 일자리를 향해 다녀야 하는 사회도 아닌 사회말이다. 이른 귀가에 모두가 함께 모여 함께 저녁을 할 수 있는 사회. 그건 꿈같은 천국일테지.
하지만, 시 <전갈> 의 전문보다 <좋은 사람들>의 시 전문을 올리고 서평을 마치려 한다.
<좋은 사람들>
우리가 살아가는 땅은 비좁다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적다 하지만 햇빛은 좁은 골목에서 가루가 될 줄 안다 궂은 날이 걷히면 은종이 위에다 빨래를 펴 널고 햇빛이 들이비치는 마당에 나가 반듯하게 누워도 좋으리라 담장 밖으론 밤낮없는 시선들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게 바쁘고 나는 개미들의 행렬을 따라 내 몇 평의 땅에 골자기가 생기도록 뒤척인다 남의 이사에 관심을 가진 건 페허를 돌보는 일처럼 고마운 희망일까 사람의 집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일이 목메게 아름답다 적과 내가 한데 엉기어 층계가 되고 창문을 마주 낼 수 없듯이 좋은 사람을 만나 한 시절을 바라보는 일이란 따뜻한 숲에 갇혀 황홀하게 눈발을 지켜보는 일 (지금은 적잖이 열망을 식히면서 살줄도 알지만 예전의 나는 사람들 안에 갇혀 지내기를 희망했다) 먼 훗날, 기억한다 우리가 머문 곳은 사물이 박혀 지낸 자리가 아니라 한때 그들과 마주 잡았던 손자국 같은 것이라고 내가 물이고 싶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노을이 향기로운 기척을 데려오고 있다 날마다 세상 위로 땅이 내려앉듯 녹말기 짙은 바람이 불 것이다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중 마지막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