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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는 별의상인


밥, 밥이 뭔가.

 

'삐알', '분추' 등등 엔간해서는 도시 사람들이 잘 못알아듣는 시골말들이 이 책에선 종종 나온다.

나는 강원도 촌에서 자란 아이라 그런지 이런 단어가 무시로 등장하는 이 책이 얼마나 웃겼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삐알'은 비탈을 가르킬 때 하는 말이고.. '분추'는 초등학교 내내 그렇게 알고 지냈던 '부추'의 다른 말이다. 학년이 올라가고 다른 아이들과도 만나고 TV도 보면서 '부추'라고 불러야 함을 알았다. 하지만 우리네 식구들과의 대화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친구들은 우리식구끼리만 하는 말이 좀 많다는 말을 하긴 했었다.ㅋㅋ 그러면 그냥 나는 고개만 갸우뚱 거리고 넘어갈 뿐 큰 어려움은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크면서 나도 그 말을 안쓰게 되고 혹은 엄마 아빠한테 표준어 쓰기를 강요하기도 하는 딸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로 우리를 키워준 것이 감사하기도 하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 아빠가 더욱 생각나게 했기 때문에....  그리고 결혼 8년차가 된 형부도 이제는 별 통역없이 우리엄마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ㅋㅋ

 

암튼,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말부터가 구수한 단어와 달콩달콩한 요리말들을 입에 올리며 우리네 밥상 이야기를 차려낸다.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먹거리를 취재, 연재했던 글들을 한데 모아 엮어낸 것이다. 표지사진에서부터 느껴지지 않는가. 저 소박하고 깔꼼한 밥상을. 속에서도 쌓여 속을 부대낄일 절대 없을 것 같은 밥상. 자연그대로 소화되어 그대로 공중분해 될 것 같은 그런 밥상이다.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를 키워주는 농부들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키워내나. 과연 안전한가.

그런 밥상을 늘 무시로 대하고 먹는 농부들의 생각과 일상이 어떤지 이 책을 통해 들여다 보기에 더 없이 좋았던 책. 이 농부들과 같은 맘으로 자식키워내듯이 농사일 하시는 분들도 많을 테고 아닌 분들도 계실터이다. 그러나 일단 여기에 실린 농부맘 같은 사람들만이 존재한다면 우리네 먹거리는 정말 청정 그 자체일텐데...

 

얼마전 읽은 만화책 [리틀 포레스트], 세미콜론에서 한 주인공이 말한 게 생각난다.

"난 말야. 타인에게 죽여 달라고 하고는 죽이는 법에 불평하는 그런 인생 보내기가 싫어졌어."

 

이들은 온전히 자신이 살아온 삶으로 말하시는 분들이기에 우리가 더욱 가타부타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네 먹거리를 책임지고 바지런히 움직이시고 자연을 지킨다는 개념도 아닌, 그저 함께 그 속에 같이 사는 삶. 소박해지는 것이 아닌 그런 자연 모습 그대로를 닮다보니 그렇게 사시는 분들.

그리고 또 저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생각과 방식대로 살고 몸으로 보여주시는 분들.

그 따스함이 가을철 햇살 못지 않으시다.

 

경북 울진에 사시는 "신바람농법"으로 지으시는 한 부부는 천둥번개가 치자 진딧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착안하여 그렇게 농사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신바람농법"이 무엇이냐면 그런 소리에 진딧물이 떨어지니 신기하여 자세히 관찰한 결과 실제로도 진딧물이 다른 밭작물보다 없고 잘 자라 징과 꽹가리 등으로 신명나게 그 농작물과 놀아주며 농사를 짓게 된 것.

 

그리고 유기농을 고집하는 농부들의 한결같은 말은 결국 이거다.

"화학농업은 땅도 죽고, 사람도 죽는 살생농업"이기 때문이란다. 이말도 허투루 그냥 생각으로 하시는 법이 없으시다. 다 다년간의 관행농과 유기농을 다 겪어보시고 나오신 말이시니.. 우리가 어찌 유기농에 대한 비판의 말을 들을세가 있겠는가. 몇 십년씩의 결과물과 삶으로 말씀하시는 말일진데 어찌 연구소 안에서 몇 년만에 나온 데이터와 자료들로 나온 말과 비슷하다 비기겠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속세를 끊고 자기자신만의 고집만으로 세상을 사는 농부도 아니다.

 

자연과 인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좀 더 자연스럽고 좀 덜 인위적인 삶"을 궁리하되, "인위도 하나의 자연계이자 그 일부"라고 보기 때문에 야마기시즘 농법에서는 과학 기술을 활용한다. ....... 식성이 같을 수 없듯이 사람마다 남들과는 다른 개성이 있는 까닭에 상안마을에서는 무엇보다 이 다름을 인정한다. 나아가 "다른 것이 원칙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p.112

 

다른 것이 원칙일지도 모른다.. 며 심히 고심하며 사는 삶. 그 속에서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고 고민하고 균형있게 조화롭게 살고자 하는 삶. 멋스럽지 않은가. 아직 나는 내 삶으로 말할 수 있는 여지가 터럭 한 올만큼도 없다. 이 글 읽고 저 글 읽고 이말에서 저말로 옮기는 작업만 해대는, 말 그대로 천박한 멍청이라고 하기엔 좀 가슴아프지만, 그 만화속 주인공이 던지는 말이 내게 던지는 말 같아 따끔거렸던 기억이 새삼 자꾸 떠오르게 했던 책. 모 개그프로그램에서 장난처럼 하는 말. "그렇게 살아봤어요? 살아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라고.... 내가 그렇게 정직하게 살아낼 게 아니라면 다른 잣대로 남을 평할 수도 없지 않을까 싶다. 우리네 밥상 위가 안전치 못하네 어쩌네 하면서 아이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 외려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에겐 어떻게 들렸을까...

 

 

"먹는 법은 사는 법이다." 라 헬렌 니어링이 말했다. 나도 내가 살아온 삶으로 말하는 날이 어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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