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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헹구어주는 세탁소
  • 외등
  • 박범신
  • 12,150원 (10%670)
  • 2011-02-28
  • : 183

몇 해 전에 홍수현과 기태영이 연기한 KBS TV문학관 <외등>을 본 적이 있다. 원작소설을 이미 읽은 후였지만 각색이 꽤 많이 된 드라마는 새로운 작품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내가 책을 잘못 기억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슬핏 한 기억이 난다. 단막극은 단막극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그 맛이 다르지만 두 매체는 주인공의 이름과 몇 가지 장면, 대사들 외에는 다른 작품이라 불러도 될 만큼 다른 이미지를 풍긴다.

 

 

박범신 작가의 소설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기에 그의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관해서 내가 뭐라 말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소설 <외등>과 <비즈니스>, <나마스테>를 보면 참 무덤덤하게 말하는 듯 하면서도 정곡을 찔러내는 통에 보면서도 뜨끔뜨끔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정신을 놓고 보다가 어느 순간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장면이나 대사, 상황 등이 숨어있다.

 

단막극이 '혜주(홍수현)'와 '영우(기태영)'의 사랑이야기에 촛점을 맞춰 진행하고 그 사랑을 더 애달프게 만들기 위한 도구로 시대적 배경이 가미된 듯한 느낌이라면 소설은 그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내보이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혜주'와 '영우'의 사랑을 포함시킨 느낌이다. 그래서 소설을 먼저 읽은 사람이라면 드라마의 달달한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될터이고, 단막극을 보고 "재밌겠다" 싶은 마음에 소설을 펴든 사람이라면 "뭐야, 이게!" 하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느쪽이 더 낫다고 할 수 있겠냐만은 깊이감이나 시대가 주는 씁쓸한 기운은 역시 원작소설에서 훨씬 많이 느껴지는 듯 하다. 표지만 보아도 뭔가 핏빛어린 느낌이 들 정도니까.

 

 

 하지만 그 씁쓸한 기운 탓에 읽는 것이 버거운 이들도 있을 듯 싶다. 가끔은 너무 솔직하거나 너무 섬세하면 도리어 불편하고 무서운 기운이 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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