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은 사람을 속이지도, 거짓말하지도 않아요.”
미쓰자키 도지로는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만, 안하무인인 데다 독설가이기까지 한 법의학계의 권위자다. 그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법의학에 무관심한 의사와 경찰관들을 비판하는 한편, 빈곤하고 열악한 법의학계의 현실을 신랄할 정도로 솔직하게 토로한다.
그의 발언은 대중의 거센 항의와 비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TV 화면 너머에서 그를 향해 조용히 증오를 드러내는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데이토 TV 홈페이지에 미쓰자키를 향한 협박에 가까운 도전장을 올리는데…….
“나는 사람을 딱 하나 죽일 거야. 반드시 자연사로 보이게 말이야.”
도전장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도, 희생자가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 결국 미쓰자키와 그의 팀은 근처 지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변사 사건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죽음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치밀하게 자연사로 꾸며낸 살인일까?
<히포크라테스의 회한>은 다섯 편의 사건이 이어지며 하나의 큰 이야기를 이루는 연작 추리소설이다. 각각의 죽음은 겉으로만 보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원인이 있다. 방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된 노인, 이미 중병을 앓고 있던 외국인 노동자, 분명 교통사고로밖에 보이지 않는 현장 등…….
그러나 시신에 남은 미세한 흔적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 법의학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직접 말할 수 없는 죽은 자를 대신해 그 죽음에 얽힌 진실을 찾아내는 작업 말이다. 미쓰자키는 한 번 내려진 결론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듯, 죽은 자가 남긴 희미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 그의 끈질긴 추적이 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등장인물들의 케미가 선사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저돌적으로 사건에 뛰어드는 형사 고테가와와 그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 사실 제대로 못 하는 ) 부검의 마코토 사이의 미묘한 관계가 이야기에 생기를 더한다.
두 사람은 썸을 타며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하는 듯하다가도 금세 투닥거리며 서로를 괴롭히는 남매 모드로 전환한다. 하지만 사건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진지하고 끈질긴 면모를 보여준다.
미쓰자키 교수의 팬이자 부검을 유난히 좋아하는 미국인 부검의 캐시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영어가 뒤섞인 독특한 일본어를 구사하는 캐시까지 합류해 세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도 잠시 숨을 돌릴 만한 유머가 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드러내려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을 읽으며 일본 사회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었다. 변사 사건의 원인을 밝히는 데 꼭 필요한 부검이 의외로 많은 현실적 장벽에 부딪힌다는 사실, 그리고 외국인을 향한 배타적인 시선이 여전히 일본 사회에 깊이 남아 있다는 점 등이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녹아 있다.
다섯 가지 사건 가운데 무엇이 예고된 살인인지 의심하며 읽다 보니,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죽음조차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돌격대처럼 현장으로 뛰어드는 고테가와, 그의 곁에서 함께 사건을 파헤치는 마코토, 그리고 미쓰자키의 세밀하고 완벽한 부검이 어우러지며 감춰진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는 소설 <히포크라테스의 회한>
도전자는 왜 미쓰자키에게 그토록 위협적인 도전장을 보낸 것일까? 자연사로 ‘보이게 만든’ 죽음과 진짜 자연사를 팀 미쓰자키는 과연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히포크라테스의 회한>은 마지막까지 독자가 의심을 거두지 못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죽은 자의 희미한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 법의학자의 손길 하나하나에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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