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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엄마의 책 읽는 다락방
  • 자작나무 숲
  • 김인숙
  • 16,020원 (10%890)
  • 2025-12-30
  • : 3,045

"수식어들은 쓰레기처럼 의미에 냄새를 입힐 뿐이다”

대저택을 장악하고 있던 엄청난 쓰레기 더미에 깔려 죽은

한 할머니, 집에서 발견된 유골, 그리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채 방치되어 있던

어떤 존재.. 소설 <자작나무 숲>은 이렇게 추리 혹은

미스터리를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소설의 서사적 형태가 특이하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소설이 어떤 방향을 향해 흐르는 서사라면, <자작나무 숲>은

한 지점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친다. 산1번지가 있는 ‘곡교’에서

시작해 ‘곡교’에서 마무리하는 글. 이곳은 마치 자석처럼

인물과 기억, 과거와 현재를 끌어당긴다. 한 공간에

갇혀서 무한대로 맴도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야기랄까?

그리고 이 소설은 삶에 대한 절망을 이야기한다.

고작 열다섯 살의 어린 여자의 몸에 잉태되어 태어나기도 전에

죽임을 당할까봐 뱃속에서 이리저리 도망다녔던 모유리와

사업 실패 끝에 차 안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를 둔 정보하.

이 둘이 서로에게 끌린 이유는 추락하는 내면이라는 어떤 비슷한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가장 강렬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모유리의 할머니가 끌어모은

쓰레기 더미와 그 쓰레기를 품고 있던 산1번지라는 공간이 아닐까?

원래 산1번지는 일본 패망 직전, 도망치듯 떠난 일본 부자의 집이었다.

사람들의 소문에 따르면 그들은 장애가 있는 딸을 그곳에 두고 떠났고

부모를 그리워하다 죽은 그녀의 원혼이 집에 남아 기이한 일들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조선을 착취했던 일본의 모습처럼, 해방 이후에도

아버지의 돈놀이를 물려받아 사람들의 삶을 잠식했던

산1번지 주인 모칠성. 고리로 빌려준 돈은 일시적으로 숨을 돌리게 하지만

결국엔 동네 사람들의 목숨줄을 죄는 도구가 된다. 마치 쓰레기처럼 집에 들러붙어있는 원혼과

악귀처럼 돈놀이를 했던 추악한 심성은 결국 점점 더 집 자체를 갉아먹은 것은 아닐까?

따라서 산1번지는 단순한 배경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너무도 수치스럽고 비참한 기억을 떠안은 ‘쓰레기 더미’ 그 자체다.

그리고 할머니가 평생에 걸쳐 끌어모았던 쓰레기들 역시 단순한 집착이나 광기가 아니라,

무언가를 덮고 숨기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무엇을 감추고 싶었던 것일까.

짓누르는 슬픔이라는게 뭔지 알려주는 책 <자작나무 숲>

숨죽여 우는 존재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모유리의 할머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미쳐 돌아가는 상황에 깽판을 놓을 수 없었기에 어쩌면

쓰레기를 모으는 방법을 택했을 수도 있겠다싶은 느낌..

할머니를 영원히 덮어버린 쓰레기 더미.. 그 쓰레기 아래에는

할머니 개인의 비밀 뿐만이 아니라 이 땅에 차곡차곡 쌓여온

폭력과 착취 그리고 버려진 사람들의 기억이 함께 묻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소설 <자작나무 숲>은 그렇게 우리에게 짓눌린 슬픔과

비참한 기억이라는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저 추리 미스터리 장르라기에는 시적 분위기가 매우 풍부한 책 <자작나무 숲>을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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