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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엄마의 책 읽는 다락방
  • 긴 잠에서 깨다
  • 정병호
  • 20,700원 (10%1,150)
  • 2025-12-04
  • : 1,500

‘기억’은 어떻게 미래를 여는 문이 되는가

일본과 한국의 민감한 역사적 문제는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채 수십 년의 시간을 지나왔다. 그동안 주로 정치적인 논의만 오고 갔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이 책 <긴 잠에서 깨다>를 읽고 민간 차원에서의 노력도 꽤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혹은 르포식의 글이 얼마나 재미있겠나 싶겠지만 이 책 <긴 잠에서 깨다>는 내가 최근 읽은 책들 중에서 최고로 꼽을 만큼 흥미진진했다. 피해자 유골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굵은 땀방울이 실제로 보일 정도로 현장감이 넘쳤다.

사실 저자인 정병호 교수님은 원래 미국 대학 박사 논문을 위해 일본 어린이집을 조사차 일본에 온 것이었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홋카이도에서 자연친화적이고 자유로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스님 도노하라씨를 만나게 된다. 운명이나 귀인이라는 게 실제로 있다고 느껴지는 게, 하필이면 저자가 만나게 된 도노하라씨가 일본에서의 인종과 민족 차별 문제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그동안 아이누 문제, 민중사, 조선인 유골 발굴 등등 평화 운동과 평화 교육을 이끌어온 사람이었던 것. 마치 한국와 일본의 화해를 바라는 신이 이 둘을 연결해 준 느낌이 들었다.

정병호 교수님은 도노하라 스님과 뜻을 같이하게 되면서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평화 워크숍'을 열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둘의 협업은 한국 방송사가 참여한 다큐멘터리 제작 ( 홋카이도 아이누 문제,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침략사 )으로 이어지게 되고, 결국 한국과 일본 각각에서 대학생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만들어지면서 97년에 비로소 홋카이도에 있는 슈마리나이 지역에서 대규모 일제 징용 피해자 유골 발굴이 시작된다. 특히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우정을 쌓아가는 일본과 한국의 대학생들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이때부터 역사 청산이나 화해 문제에 대해서 일본과 한국 양국이 좀 더 노력을 기울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발굴 작업이 마냥 순탄하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서 슈마리나이 지역에서의 발굴 현장은 참가자들의 웃음꽃이 만발했었긴 하나하나의 앙케트 조사 때문에 분위기는 굳어진다. 한국 측 대학생들이 일본 학생들을 위한 준비한 설문지에 "일본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들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것은 일본 학생들의 자격지심을 건드려서 그들은 억울한 감정을 폭발하기도 한다. 아사지노 지역에서의 발굴은 조급한 언론 플레이 때문에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놓이게 되면서 결국 추도비 제막식은 열리지 못한다.

사실 이토록 민감한 역사 문제가 논란과 갈등의 여지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긴 잠에서 깨다>는 일본과 한국, 양쪽이 모두 과거를 기억하고 애도해 줄 것을 부탁하는 글이다. 외면하고 싶은 아픈 역사, 아픈 상처이지만 분명히 당시 희생된 분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 사실을 기억해야만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이 무척 인상적인 이유는, 평화를 단지 말로만 외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직접 발로 뛰고, 참여하고,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이들의 노력이 정말로 존경스럽고 눈물겨웠다. 평화 디딤돌, 박물관, 순회 전시 등등과 같은 실천들은 지금 현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이고 과거를 꼭 기억하게 만드는 노력들인 것...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끼리 정치적 합의를 맺기보다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깨닫고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정병호 교수님의 실천적 삶과 행동이 깊은 울림으로 남는 책 <긴 잠에서 깨다>를 모두에게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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