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때이른 죽음 그리고 두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실종
소설의 앞부분은 독자들을 복잡한 미로 속으로 끌어들인다.
중간쯤 이르러 내 예상을 약간 벗어나는 이야기....
그러나 책은 인간에게 있어서 보다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공포를 독자들에게 드러내 보이는데....
주인공 윤주의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윤주의 삶에 불행이 닥칠 때마다 그녀의 꿈에 나오는 아버지
그러던 어느 날 결혼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던 시점에 윤주는
또 아버지 꿈을 꾸게 된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달래던 윤주...
그러나 출장을 갔던 남편 재훈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혼자서 어린 딸을 키우고 돈도 벌어야 하는 윤주..
친정 엄마에게 부탁하지만 독립적이고 강인한 엄마는
단번에 그녀의 요청을 거절한다. 하지만 평소에도
살갑던 시어머니가 시골에 있던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윤주에게 와서 예린과 집안일을 모두 돌봐준다.
이제서야 숨통이 트이는 윤주...
그러나 평온하고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조금씩 이상하게 행동하고 말하는 시어머니. 심한 두통과
건망증 때문에 괴로워하던 시어머니는 급기야 쌀에 우유를
넣고 밥을 지으려 하거나 딸 예린이의 이름을 혜린이라고
잘못 부르는 등 윤주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데 ...
과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소설 <기억>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매우 안타깝고
비극적이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 성장하는 존재가 맞지만
조금 행복해지려고 하면 불행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윤주의
삶에 뛰어든다. 남편의 이른 죽음과 부모님의 질병 그리고 치매...
로봇이 아닌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불행이지만
너무나 현실적이라 오히려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깊고 뜨거운 사랑이라는 키워드도
책을 읽으며 떠올랐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마치 물가에 내놓은
자식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노릇.. 일부러 모질게 딸을 대했지만
윤주의 불행을 보면서 가슴 아파했을 엄마의 심정이 너무나
절실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이 소설이 본격적으로 "돌봄이라는 노동"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갈수록 점점 늙어가는
우리 사회... 노년이라는 인생에는 질병과 고독 그리고 가난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듯한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 <기억> 귀신도 없고 핏방울 하나
튀지 않는데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공포로 우리를 이끄는 소설이다.
문제는 다른 사건과는 달리, 우리 인생에서 발생한 확률이
매우 높은 일들이라는 것! 마치 사회파 미스터리를 읽는 느낌이었다.
장르소설의 매력과 다양하고 풍부한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휴먼 드라마의 매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소설
<기억>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