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내 세계에 구멍이 생겼다
아주, 아주, 아주 시커먼 구멍이었다
"여기만 아니면 돼..." 우리는 힘든 현실을 견뎌내다가 문득
어딘가로 날아가고 싶은, 환상의 세계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고전 문학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부터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모험>까지
주인공이 이세계를 탐험하며 성장하는 책들이, 그래서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유소 작가의 책 <호흡과 폭발>도 어떻게 보면 현실을 닮긴 했지만
이상하고 기묘한 사건이 빵빵 터지는 이세계를 경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모험하게 되는 세계는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차원에 있는 또 다른 공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어쩌면 주인공의 "내면 의식"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를 잠깐 살펴보자면, 주인공 유소는 병원에 갔다가 치료가 불가능한
혈관 질환이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말하자면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녀의 상태.... 다소 절망 + 허무가 섞인 기분에 시달리고 있던 그녀는
중학교 동창 고유상의 뜬금없는 연락을 받게 된다.
고유상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그의 집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가구도, 신발로, 뭣도 없는 휑한 방안에는 고유상과 새까만 구멍 하나뿐.
고유상은 유소에게 더 이상 현실을 견딜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는
다짜고짜 구멍 안으로 사라지게 되고, 충격을 받은 유소는
고민을 하다가 피자 상자에 그 구멍을 담아서 집으로 오게 되는데....
소설 <호흡과 폭발>은 일종의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유상처럼 구멍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유소는
마치 우리가 꿈을 꿀 때 그런 것처럼
현실과 조금 비슷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기묘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낯익지만 동시에 낯선 세계를 경험한다.
사망한 피해자 위에 그려놓은 흰 현장 보존선이 갑자기 일어나서
인간처럼 행동하고 말을 걸고, 천장 위에 생긴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간
유소는 한 여인과 사막을 헤매면서 그녀가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을 지켜보면서 손가락질하며 비판하는
관객들을 없애기 위해서 유소는 보이지 않는 스크린을 깨뜨리기 위해
장도리까지 들게 되는데.....
소설 <호흡과 폭발>을 읽는 동안 떠오른 초현실주의 그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시계> 마치 사막처럼 황량한 곳에
시계가 액체처럼 녹아 뚝뚝 떨어지는 그림.... 기계화, 산업화 등으로
바빠서 미치기 일보 직전인, 황폐화된 현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본
느낌이랄까....
유소가 구멍 안의 이세계에서 만나는 존재들은 어쩌면
그녀가 평소에 다양한 지적 세상을 탐험하게 되면서 만났던
또 다른 그녀의 의식, 아이디어, 생각 혹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꼈던 불안감, 두려움 등이 아니었을까? 내가 꿈꿀 때 만나는
모든 이들이 사실은 내 무의식의 여러 조각들인 것처럼 말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구멍을 찾아헤맸던 유소, 과연 무사히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까? 구멍을 소개해 주었던 유상처럼 현실 부적응으로
몸살을 앓았던 유소는 이세계를 탐험하면서 과연 무엇을 느끼고 어떤 사람으로
변해있을 것인가? 현대인이라면, 특히 젊은 사람들이라면 느낄
불안과 결핍 그리고 두려움을 주제로 독특하고 기묘한 판타지 세상을
그려낸 소설 <호흡과 폭발>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