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의 먼지처럼 작고 애잔한 내 강아지가
유럽 왕실에서 기르던 귀족 중의 귀족 혈통이라니.......
너는 어떤 모험 끝에 내게 오게 되었니?
이런 나와 함께 사는 게, 과연 너를 위한 일일까?
너는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서 나와 인연이 되었을까?
나의 귀엽지만 앙칼진 반려묘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아마도 전생에 인연이 있었을 거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내 모든 것을 주고 싶은, 너무나 사랑하는 존재
이 책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에서도 그런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물론 주인공 시습이 반려견 이시봉에게
느끼는 사랑이 우선이지만, 600쪽이나 되는 많은 페이지에는
또 다른 사랑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내가 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리고 말 거야!라고 외치는 듯한 치명적인 사랑과
순수하다 못해 애착이 집착이 되어버린 그런 사랑 이야기...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쎄시봉"처럼 우아한 이름이 어울릴 듯한 품종견인 비숑 "이시봉"
품종견이긴 하지만 이시봉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다른 개들의 똥꼬 냄새를 맡는 것
본성에 아주 충실한, 그야말로 대한민국 평균 "강아지"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평범한 이시봉과 더욱더 평범한 시민 이시습에게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은 읽기조차 힘든 품종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만 취급한다는회사 앙시앙하우스에서 나온 직원들이 이시봉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이다.
알고 보니 이시봉은 유럽 왕실에서만 길렀던 아주 귀한 혈통의 강아지였고
직원들의 손에 이끌려서 회사 대표 정채민을 만나게 된 시습은
오랫동안 이시봉을 찾아헤맸다던 정채민의 구구절절한 과거의 사연을 듣게 되는데....
세상에는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것들" 이 분명히 있다.
갈등과 충돌 그리고 불행이 발생하는 이유는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힘들고 거친 하루를 견디고 들어왔을 때우리가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이시봉으로 대표되는 반려묘와 반려견들이 순수한 사랑 덕분이다.
특히 어느 순간이 되면 가족 이상의 감정을 이 작고 소중한 존재들에게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드는 생각 "나는 너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그냥 겉으로 보면
이시봉이라는 희한한 이름을 가진 강아지를 두고 벌어지는 소유권 다툼
이야기인 것 같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빛깔의 사랑" 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17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봉이의 조상 찾기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베로와 누녜스" 이야기는 실로 흥미진진했다.
베로와 누녜스라는 너무나 소중한 아이들을 선물로 보냈는데도
자신의 사랑에 반응하지 않았던 알바 공작부인을
밟아버리고 파괴하고 싶어했던 고도이의 심정이 공감이 조금 된다고 할까?
그야말로 "죽음을 부르는 지독한 사랑 이야기" 가 아닌가 싶었다.
장장 60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뭔가에 홀린 듯 읽어 내려간 책
한마디로 "재미"와 "감동"을 보장한다. 이시봉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나폴레옹이 집권하던 당시의 스페인으로 날아갔다가
1990년대 말 프랑스에서 현실에 치이며 꿈마저 바래는 유학생들의
쓸쓸한 풍경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확장된 이야기는 상당히 풍부하고
인간적인 드라마를 이끌어내고 책의 메시지는 더욱더 명료해진다.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아마도 "작고 초라하지만 소중한 것을 지켜라" 가 아닐지. 백수에 허구헌날 술이나 마시는, 미래가 안보이는 시습에게 있어서 이시봉은 귀족 품종의 고급스런 강아지 이전에, 하루를 나누고 마음을 달래주는 영혼의 단짝인 것.
비록 거액의 돈과 이시봉을 두고 고민한 순간이 없지는 않았으나
시습은 "사랑"이란 끝까지 지켜내는 의리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또다른 이야기 속 인물인 "박유정"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뭔지 알았던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사랑에 충실했고
끝까지 지켜내려 노력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머릿속에 "너의 의미"라는 노래 가사라
떠오른다.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그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