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책 크기가 어마어마 하고요.
누드 사철제본 책이에요.
사철제본은 한마디로 실제본입니다.
일반 도서는 낱장 종이에 접착제를 붙여서 제본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철제본은 대수별로 (대수는 좀더 설명이 또 필요하고요) 페이지를 실로 묶는 제본입니다.
여기에 하드 커버를 씌우면 양장제본. 보통 그림책들이 양장제본이에요.
근데 누드 사철제본은 책등을 누드로 노출시킵니다.
똑같이 사철제본을 해도 양장본으로 만들면 책등 부분에 끼어서 쫙 펼쳐지지는 않아요.
일반 그림책 사진, 누드 사철제본 사진을 비교해 보시면 둘이 어떻게 다른지 아시겠죠?



<아듀, 백설공주>는 안그래도 그림 잘그리는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작가가 작정하고 그렸나 봅니다.
너무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아름답다'고 말하는 느낌대로 아름다운 장면도 많지만,
저는 유난히 섬찟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섬찟한 아름다움...섬뜩한 느낌...
알레마냐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릴케는 이렇게 썼어요.
"아름다움은 공포의 시작일 뿐이다."
이 '공포'에 매료되고 어떤 희열을 느끼는 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공포에 매료되고 어떤 희열을 느낀다....
이 말이 제게 확 와 닿았던 대표적인 장면 (네, 그러니까 그런 장면 많습니다)은
사냥꾼이 가져온 멧돼지의 간과 폐를 백설공주의 간과 폐인줄 알고 왕비가 생으로 먹는 장면입니다.
방금 저는 '백설공주의 간과 폐인줄 알고 사냥꾼이 가져온 멧돼지의 간과 폐를 왕비가 생으로 먹는 장면입니다.라고 썼다가 고쳐썼어요.
두 문장의 차이점..혹시 저만 느꼈을까요?
1. 사냥꾼이 가져온 멧돼지의 간과 폐를 백설공주의 간과 폐인줄 알고 왕비가 생으로 먹는
2. 백설공주의 간과 폐인줄 알고 사냥꾼이 가져온 멧돼지의 간과 폐를 왕비가 생으로 먹는
별 거 아닌 차이 같지만 1번은 왕비가 먹는 것이 백설공주의 간이라고 독자의 뇌리에 남고
2번은 왕비가 멧돼지의 간과 폐를 먹는 느낌이 더 강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래 그림은, 1번과 2번의 느낌을 느끼는 분들이라면 좀 더 섬찟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이 돌아갔는데 고칠 줄을 몰라서...고려해서 봐주세요)
백설공주의 간과 폐인 줄 알고 먹는 왕비의 모습이 마지막 그림에서는 사진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에요.
자기가 가지지 못한 아름다움과 젊음을 질투하여 끝내 죽여버리고 마는 왕비가
상상속의 모습이 아니라, 사진인 거에요. 그만큼 더 실제하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뜻일까요.
백설공주 이야기를 왕비의 입장에서 서술한 이유를 쓴 책 도입부의 글이 참 좋습니다.
알레마냐 작가의 글도 좋고,
김시아 번역가의 글도 좋습니다.
어느 성문으로 들어가는 듯한 그림, 정말 좋죠?
김시아 번역가의 말을 잠깐 볼게요.
"<아듀, 백설 공주>는 선과 악의 구도를 넘어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나이듦,
인간의 욕망과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아듀. 아듀는 '신에게로'라는 말입니다.
영원한 작별 인사를 할 때 '아듀'라는 말을 씁니다.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그림책은 그냥 '백설공주'가 아니라, '아듀, 백설공주'입니다.
백설공주 앞에 붙은 '아듀'는 우리에게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무엇과 작별을 해야하는 것일까요?"
이 책의 아름다운 장면은 너무너무 많지만,
딱히 백설 공주가 아름다운 줄은 모르겠어요.
알레마냐 작가는 왕비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백설 공주의 아름다움을 질투하는 것으로 그리기보다
그저 '질투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열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요.
제가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아름다운 장면은 죄다 왕비의 기괴한 모습..입니다.
이 기괴함이 아름다움과, 공포와 연결된다는 것이 참 벅찬 경험입니다.
몇 년간 제 감정들은 뭔가 이유가 있어서 생긴 것들이었는데,
이 책에서 느껴지는 감탄과 공포는 그저, 그 느낌 자체라고 해야하나요.
저릿할 정도로 서늘한 아름다움. 아 이게 공포로 가는 첫걸음이구나 싶은 느낌.
내가, 인간이 정말 무서운 존재구나 싶어요.
저는 지금 무엇을 저렇게 뜯어 씹고 삼키고 있을까요.
손을 벌겋게 피로 물들이면서요.
(네이버 그림책 카페 제이그림책포럼 서평이벤트에서 책을 받고
제 느낌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