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단순하게, 솔직하게, 당당하게
  • 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게
  • 나탈리 비스
  • 13,500원 (10%750)
  • 2023-07-03
  • : 664

이 책 제목을 듣자 시 한 편이 떠올랐어요.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희성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난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의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도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림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이 시는 노래로 만들어졌고,

세월호 9주기 추모식 때 합창단이 부른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 전에 제게 이 시는 가난한 연인을 위한 사랑의 시..였는데

그 합창 이후로는 또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어요.

이제 이 시는 제게 <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게>라는 그림책과 겹쳐 떠오르겠어요.

거리에 사는 앙리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첫 페이지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앙리 할아버지는 클로르 버스 정류장에서 살아요.

아주 오랜 시간 그곳에서 지냈지요.

이제 할아버지를 눈여겨 보는 사람은

아무도, 거의 아무도 없어요."

저는 이 앙리 할아버지가 딱히 노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정류장에서만 서로를 만나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던가요.

출퇴근, 등하교 1분 1초를 다투는 시간대 정류장에는 늘 같은 사람들이 만나지곤 합니다.

그 차를 놓칠새라 후다닥 와서 어디론가 제각각의 목적지를 향해 후다닥 사라지는 사람들.

그런 이들끼리 갖는 유대감은 그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지각인가?" 1초의 궁금함 정도일까요.

사라지지 않고 그 곳에 나타나는 동안은 서로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찰나의 이웃들.

앙리 할아버지가 그렇게 만나지는, 내 생활의 배경같은 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궁금하지도 않던 그 사람이,

이렇게 외로워하며 살았다니요.........

이 책이 제 마음을 휘저은 건,

한참 후에 알았어요. 그림자 때문이었어요.

이렇게 눈부신 햇살과 서늘한 그림자.

딱 프랑스스러운 건물들 사이에

어쩌면 프로방스 쯤으로 느껴지는 저 햇살들.

외로움은 아무리 아름다운 날씨라도,

아무리 멋진 풍경 속에서도 존재하는구나. 하는 느낌.

그 느낌 때문에 저는 이 책이 좋았던가봐요.


뜬금없이 나타난 아기 코끼리.

제가 장담하건데요.

앙리 할아버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도 이 코끼리를 보지 못했을거에요.

앙리 할아버지와 아기 코끼리가 어떻게 되었는가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도 아마 모를걸요.

이 책 읽으면서

내가 눈길을 주지 못한 사이에

얼마나 많은 코끼리와 고릴라와 플라밍고와 송아지, 기린이

나타나고 사라졌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특이한 동물이라도,

아무리 다른 이에겐 특별한 의미를 가진 존재라도

내가 관심을 주지 않으면 안보였을거에요.

그러면서도 저는 "왜 이렇게 아무 일도 없는걸까.""왜 아무도 없는걸까." 한탄하겠죠.

그들을 그들대로 외롭고,

저는 저대로 외롭겠죠.

아 뭔소리여. ㅎㅎ

하여간 저는 이 그림책 덕분에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는 제 외로움이 많이 위로받았어요.

다 이렇게 살고 있구나. 하고요.

중년의 동양 아줌마에겐 하염없이 위로가 되었던

이 책을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읽을지 너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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