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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잘 드는 작은 방
  • 수용소군도 4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14,220원 (10%790)
  • 2020-11-20
  • : 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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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박된 죄수들은 5명에서 7명씩 마차에 실려서 <고르까>라는 수용소의 묘지로 운반되었다. 거기서 그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 커다란 구덩이 속에 떠밀려 그대로 <생매장>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잔인성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사람을 운반하고 들어 올리는 작업에서 죽은 사람을 다루기보다는 산 사람을 다루는 쪽이 훨씬 더 편하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작업이 아다끄에서 밤마다 여러 날 계속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방식에 의해서 우리 당의 도덕적 정치적 통일은 달성되었던 것이다.
- P66
슬라바는 전쟁 전에 아홉 살 때부터 도둑질을 하게 되었고 우리 군대가 왔을 때도 도둑질을 했으며 종전 후에도 계속했다. 그는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치고는 어른스러운 침울한 웃음을 띠며 앞으로도 계속 도둑질을 하며 살아갈 작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말이에요." 그는 제법 논리적으로 말했다. "노동자 ㅁ노릇이나 하면 빵과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구경할 수 없잖아요. 나는 아이 때 너무 고생을 했으니까 앞으론 좀 잘살아보고 싶어요." "독일군이 쳐들어왓을 때는 뭘 했니?" 나는 그가 언급하지 않은 2년간, 즉 독일군 점령 기간에 대해 물었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독일군이 들어왔을 때는 일을 했지요. 독일군 치하에서 어떻게 도둑질을 해요? 그랬다가는 당장에 총살이에요."
- P162
연소자들은 어른들의 수용소에 와서도 그들의 행동의 주요한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즉, 모두 한패가 되어 일제히 적을 습격하기도 하고, 일제히 적을 물리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힘을 강화시켜 여러 가지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들의 의식 속에는 해도 되는 짓과 해서는 안 되는 짓을 분간하는 힘이 전혀 없으며 선과 악에 대한 관념조차 없다. 그들에게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모두 선이고 자기를 방해하는 것은 모두 악이다. 그들이 방약무인하게 행동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유리한 처세술이기 때문이다. 힘이 통하지 않을 때는 거짓 연기를 하거나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
- P162
<남의 가랑이 들쑤시지 말라고!>, <(건드리지도 않는데) 오 납작 엎드려?> (이 말의 괄호 부분은 비슷한 낱말로 바꿨지만, 원래의 것을 그대로 쓰면 다음에 오는 <엎드리다>라는 동사가 아주 음탕한 뜻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듣는 사람을 흠칫하게 만드는 표현이 특히 군도의 여자 주민의 입에서 튀어나올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황하게 된다. 그녀들은 비유에 에로틱한 소재를 즐겨 사용한다. 연구 논문이 지니는 도덕적 제한 때문에 그런 에로틱한 표현들을 열거하지 못함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 P239
제끄는 항상 <현재보다 더 나쁜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그는 언제나 운명의 함정과 악마들의 습격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설사 생활이 조금 완화되는 경우에도, 무언가 잘못되어 일어나는 일시적은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항상 재난에 대비하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운명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남의 운명에도 동정하지 않는 제끄의 냉엄한 정신이 형성되고 성숙되어 가는 것이다. 정신적인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제끄는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일이 거의 없다. 밝은 쪽으로도 어두운 쪽으로도. 절망 쪽으로도 기쁨 쪽으로도.
- P257
대체로 제끄들은 <유머>를 높이 평가하고 좋아한다. 그것은 군도 첫해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주민들의 심리적 바탕이 건전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들은, 눈물은 자기변명이 될 수 없으며 웃음은 얼마든지 좋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유머는 그들의 변함없는 동맹자로서 그것 없이는 아마도 군도에서의 생활을 이어 갈 수 없었을 것이다.
- P266
우리 나라 곳곳에서 우리는 이런 것을 보게 된다. -개를 끌고 가는 경비병이 누구를 잡으려고 앞으로 뛰어나가는 석고상이 있다. 따시껜뜨시에는 이런 동상이 NKVD 부속의 사관학교 앞에 서 있는데, 랴잔시에서는 마치 시의 상징처럼 미하일로프 방면에서 시로 접근하면 눈에 들어오는 유일한 기념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보고도 혐오의 몸서리도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마치 그것이 당연한듯이, 개를 부추겨 사람한테 덤벼들게 하는 모습의 동상에 아주 익숙해져 버렸다.
우리들에게 덤벼드는데.
- P452
예를 들어 아리스찌드 이바노비치 도바뚜르만 한 괴짜도 없을 것이다. 그는 루마니아와 프랑스 혈통의 뻬쩨르부르끄 출신 고전 문학가로, 한평생 독신으로 지낸 고독한 사람이다. 마치 고깃덩어리를 빼앗긴 고양이처럼, 그는 헤로도토스와 카이사르를 빼앗기고 수용소로 끌려온 것이다. 지금도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 해독되지 않은 고문서들로 가득 차 있어서 수용소에서도 늘 꿈속에 있는 꼴이었다. 그는 여기 들어와서 일주일도 채우기 전에 죽을 게 뻔했지만, 의사들이 그를 거둬들여 의무 통계계라는 좋은 일자리를 주었고, 나중에는 수용소에서 양성하기 시작한 의무 보조계 교육을 위해 한 달에 두 번씩 그에게 강의를 의뢰하기까지 했다. 수용소에서, 더욱이 라틴어 강의를 맡게 된 것이다. 도바뚜르는 조그만 칠판 옆에 서서, 행복했던 대학 시절로 되돌아간 듯 희색이 만연하다.그는 수용소 군도 주민들이 일찍이 본 적도 없는 괴상한 동사 변화형을 칠판에 쓰면서 그 분필 닿는 소리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P204
1930년대 이후로 우리 나라에서 산문이라는 것은 땅속으로 잦아든 호수가 남긴 거품 같은 것이다. 그것은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것과 격리되었기 때문에 이미 산문이라 할 수 없고 단지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중략) 사물을 깊이 통찰하고 그 특징을 파악해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를 그만두지 않은 사람들은 그 시대에 죽음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수용소 안에서 죽어 갔고, 일부는 전선에서 자포자기적 행동 속에 죽어 갔다.- P210
수용소의 악착스러움, 대인 관계의 잔인함, 마음을 굳게 잠근 비정의 문, 일체의 양심적인 일에 대한 혐오. 이 모든 것이 쉽사리 수용소 주변의 세계를 휩쓴 후 우리 나라의 ‘바깥 세상’에 깊이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이리하여 군도는 자기를 만들어 놓은 것에 원한을 품고 ‘소비에뜨 연방’에 복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그 어떤 잔혹한 행위도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 P323
아르놀드 수시와 같은 사람은, 쉰 살쯤에 수용소에 왔다. 그는 한 번도 신을 믿지 않았으나, 원래 예의 바른 사람이었으며, 다른 사는 방법을 몰랐다. (중략) 그는 언제나 바보짓을 하여 곤경에 빠지고, 어려운 사정에 있었으며, 일반 작업도 하고, 징벌 지역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게다가 수용소에 들어올 때의 모습 그대로 살아남았다. 나는 처음의 그의 모습도 보았고, 나온 후의 그의 모습도 알고 있어서 보증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수용소 생활에서는 그 부담을 덜어 준 세 가지 사정이 있다. 그가 노동 불능자로 인정된 것과, 수년간 가족이 보내는 소포를 받았으며, 음악에 재능이 있는 덕택에 아마추어 연예회에 나가서 식사의 부족을 보충했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한 사정이 없었더라면 그는 죽었겠지만, 그가 사는 방법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P380
1946년에 사마르까 수용 지점에서 지식인들의 그룹이 너무나 쇠약하여 죽기 직전의 상태에 놓였다. 그들은 굶주림과 추위와 무리한 노동으로 지쳐 있었다. 그들은 수면마저 빼앗겨 버렸다. 토막 막사를 아직 짓지 못해서, 잘 장소가 없었다. (중략) 며칠 후로 다가온 죽음을 예지하면서, 그들은 벽 옆에 앉아서 잠잘 수 없는 자기의 최후의 자유 시간을 이렇게 보냈다. 찌모페예프레소프스끼가 그들을 모아서 ‘세미나’를 열고, 그들은 자신들은 알고 있으나 남이 모르는 정보를 서둘러 교환하며 최후의 강의를 하고 있었다. 사벨 신부는 부끄럽지 않은 죽음에 대하여, 신학 대학 출신의 신부는 교부학을, 종교 합동파의 신도는 교의학과 교회법에 대하여, 에너지학자는 미래의 에너지학의 원리에 대하여, 레닌그라뜨 출신 경제학자는 소비에뜨 경제학 원리를 확립하려는 시도는 새로운 이론의 결여로 실패했다는 것에 대하여 강의하였다. 찌모페예프레소프스끼 자신은 그들에게 미시 물리학을 이야기했다. (뒤에 계속)- P383
(앞에서 계속) 회를 거듭할수록 참가자가 줄었다. 그들은 이미 시체 안치실에 있었다. 죽음에 대해 이미 둔감해져 있으면서, 이러한 것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인텔리겐치아인 것이다!- P383
가장 나쁜 행동을 할 때, 나는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정연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었따. 형무소의 썩은 짚단 위에 누워 있을 때, 나는 나 자신의 마음속에서 최초의 善의 태동을 느꼈다. 차츰 나에게 분명해진 것은, 선악을 가르는 경계선이 지나가고 있는 곳은 국가 간도, 계급 간도, 정단 간도 아니고, 각 인간의 마음속, 모든 인간의 마음속이라는 것이다. (중략) 종그때부터 나는 세계의 모든 종교의 진리를 이해했다. 그 종교들은 ‘인간 속에 있는 악’과 싸우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악을 완전히 추방할 수는 없지만, 각자가 그것을 줄일 수는 있다. 그때부터 나는 역사에서의 모든 혁명의 위선을 알았다. 그들 혁명은 다만 동시대의 악의 시행자만을 (서둘러서 구별할 수도 없이, 선의 시행자까지도) 구축하고 있다. 악 그 자체는 배로 증가되어 유산으로 남았다.- P397
분명히 수용소의 타락은 일반화되어 있다. 그런데 그 원인은 수용소가 지독했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우리 소비에뜨의 인간이 정신적으로 무방비인 채 군도의 땅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었다. (중략)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또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수용소와는 관계없이, 알고 있어야 한다. - P412
어떤 소비에뜨 시민과의 이야기에도 거짓말을 해야 했다. 때로는 무턱대고, 때로는 눈치를 보면서, 때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긍정하는 듯이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혹시 일대일로 바보 같은 말동무가, 우리 군대는 히틀러 군대를 되도록 깊이 유인하기 위해 볼가강까지 후퇴하고 있다. 혹은 감자의 해충인 콜로라도 갑충은 미국인이 우리 나라에 뿌린 것이라고 당신에게 말하게 되면, 당신은 찬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드시 찬동해야 한다! 머리를 끄덕이지 않고 옆으로 짓기라도 하면, 당신은 군도로 이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P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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