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어떻게 해서라도 용변을 줄이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을 적게 주어야 한다! 그리고 식사도 적게 주면, 설사 때문에 불평을 말하는 자도 없을 것이고, 공기도 더럽히지 않을 수 있다. (중략) 누구도, 아무도 우리를 괴롭히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호송대의 행동은 아주 합리적이었다! (중략) <제58조> 위반자를 잡범이나 경범죄자와 같은 한 찻간에 넣는 것도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때로는 그랬다.) 그것은 단지 죄수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아서 차량이 부족하고 시간도 없어서 정리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예수가 두 사람의 도둑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 것 역시, 빌라도가 그를 능욕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지 않았는가? 다만 그날이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골고다의 언덕은 하나밖에 없고, 시간도 짧았다. 그래서 <그는 악당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 P288
가지지 말라!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중략) 빵과 설탕은 한 번에 이틀분을 주어도 이내 전부 먹어 버리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이제 아무도 훔칠 수가 없다. 당신은 하늘의 새처럼 자유롭게 된다! 항상 마음에 간직할 수 있는 것만 가지는 것이 좋다. 여러 언어를 알며 여러 나라를 알고 여러 사람을 알라. 당신의 기억이야말로 당신의 여행 가방이 될 것이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 P312
"일반 작업이란 각 수용소의 주요한 기본적인 작업을 말하는 걸세. 전 죄수의 80퍼센트가량이 일반 작업에 참가하고 있는데 결국은 모두 죽어 버리고 말지. 하나도 살아남을 수 없어! 다시 새로운 죄수를 끌어다가 인원을 보충하는 거야. 거기 끼어들면 항상 굶주려야 하고 항상 젖은 옷을 입어야 하고, 터진 신발을 신어야 하고, 식량 배급량에 속아야 하고, 가장 나쁜 막사에서 자야 하지. 병이 들어도 치료 한 번 받아 볼 수 없어.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것은 일반 작업에 나가지 않는 죄수들뿐이야. 무슨 대가를 치러서라도 일반 작업에만은 끼지 말도록 하게! 첫날부터 말이야!"
- P379
나는 반 년 전에 우리들의 수용소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수용소 관리 본부의 인사 카드에 여러 가지 사항을 기록했던 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인사 카드의 중요한 칸은 <특기란>이었다. 그리하여 죄수들은 자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수용소에서 가장 인기 있는 특기를 카드에 써넣었다. <이발사>, <재단사>, <창고계>, <제빵사> 등등. 그러나 나는 눈을 찌푸리고 핵물리학자라고 써넣었다. 나는 핵물리학자는 아니었으나 그저 전쟁 전에 대학에서 그 방면의 강의를 다소 들은 적이 있어서 원소의 기호며 매개 변수 따위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핵물리학자라고 써넣었던 것이다. 1946년이 되자 원자 폭탄이 아주 필요하게 되었다.
- P415
그리고 나도 그런 천국과 같은 수용소(죄수들은 속어로 <샤라시까>라고 한다)에 형기를 반쯤 보내고 나서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남은 것도 그 덕택이며 일반 수용소에서라면 도저히 형기를 다 치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 P416
모든 인간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일정한 사상의 보유자"(이하 인용은 끄릴렌꼬의 혁명재판소 논고 - 인용자주)다. 피고인의 개인적 성격 또는 자질이 어떠하든 간에 그에게는 오직 "하나의 평가 방법"이 적용될 뿐이다. 그것은 "계급적 합목적성"에 입각한 평가다. (중략)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다가 어느날 갑자기 자기가 "계급적 이익에 맞지 않는" 존재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P24
그러니까 죄수들의 장래는 같은 죄수 출신인 사무 보조원들에게 달려 있으며, (중략) 가죽 점퍼 하나면 북극권인 노릴스끄가 아니라 남쪽인 날치끄로 갈 수도 있고 베이컨 1킬로그램이면 시베리아의 따이셰뜨로 갈 것을 모스끄바 교외의 세레브랸니 보르로 갈 수도 있다. (물론 재수가 없으면 가죽 점퍼와 베이컨만 공짜로 떼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뜻을 이룬 죄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애초에 뇌물로 줄 만한 물건도 없는 죄수나 이런 혼란 속에서 태평할 수 있는 죄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 - P373
환영을 찾지 말라. 재물과 명성을 좇으려 하지 말라. 그런 것은 수십 년에 걸쳐 애써 축적된 것이지만 단 하룻밤 만에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이다. 초연한 태도로 삶을 살아 나가라. 불행을 두려워할 것도 없고 행복으로 가슴을 태울 필요도 없다. (중략)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마음을 깨끗이 하라. 그리고 당신들을 좋아하고 당신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무엇보다도 높이 평가하라. 결코 그들에게 모욕적인 말이나 욕을 하지 말 것이며 그들 누구와도 말다툼 같은 것으로 헤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것이 체포 전의 당신의 마지막 행위가 될지도 모르며 당신은 그런 식으로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