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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잘 드는 작은 방
  • 모두가 부서진
  • 조수경
  • 10,800원 (10%600)
  • 2016-10-27
  • : 546

디테일의 힘이 느껴지는, 능숙하고 읽기 편한 문장을 쓴다. 자극적인 소재로 관심을 끌려 하고, 특별히 독창적인 세계관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유리. 나는 속으로 너의 이름을 발음에 해보았다. 그러니까 너는, 현주나 지혜, 은영 같은 흔한 이름도 아니었고 지숙이나 미화, 명선 같은 촌스러운 이름도 아니었다. 유리. 그 영롱한 빛깔의 단어는 너를 통해 현현되고 있었다.
- P14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한 나이였다.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 사실 뭐든 하려면 돈이 필요한 법이었다. 좀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해 대학에 가려고 해도 돈이 필요했고, 자격증을 따려고 해도 돈이 필요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서빙 아르바이트나 배달 아르바이트 같은 것. 빡구는 서빙과 배달이 필요한 거의 모든 업종을 거치며 스물아홉 살이 되었다. 돌김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돌김은 얼마 전 배달 일을 하던 피자 가게에서 잘렸는데 아직도 백수 상태였다. 맛세이는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문래동에 있는 부친의 철공소에서 일했다. 그런 맛세이를 돌김은 늘 부러워했다.
"역시 사람은 부모를 잘 만나야 한다니까."
- P101
그도 그럴 것이 맛세이는 지갑을 열면서 우쭐대거나 불만을 드러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엷은 미소를 띤 채 영수증을 가볍게 훑어보는 맛세이를 볼 때면 빡구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랑 어울리니까 맛세이도 괜찮은 자식이 될 수 있는 건 아닐까. 서울대에 합격해서 지금은 증권 회사에 다니고 있는 우진이나 의대에 진학해서 군의관을 하고 있다는 선홍이한테도 맛세이는 괜찮은 자식일 수 있을까. 물론 우진이나 선홍이 같은 애들은 저희들끼리 따로 동창 모임을 해서 맛세이가 괜찮은 자식이 될 기회조차 없겠지만.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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