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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는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로 카를 마르크스, 에밀 뒤르켐 등과 함께 현대 사회학을 창시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 책은 뮌헨 대학 총장의 초청으로 사회적 자유주의 또는 좌파적 자유주의 성향의 학생단체인 자유학생연합이 주최한 “직업으로서의 정신노동”이라는 주제의 대중 강연회에서 두 번에 걸쳐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1917년 11월 7일에,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1919년 1월 28일에 행해졌다.
베버는 제1차 세계대전 패배와 독일혁명 발발, 독일 제국 붕괴와 공화국 수립으로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새 시대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길 간절히 바라는 독일 젊은이들 앞에 섰다. 베버는 “예언자”나 “구세주”를 찾는 이들에게 학문의 책무와 정치에 책무에 대해 논한다.
1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는 정치와 국가, 지배의 내적조건과 외적조건을 분석한 후 근대국가에 등장한 직업 정치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직업 정치가의 여러 유형과 근대 전문 관료층의 발전, 군주와 의회, 전문 관료와 정치 관료의 차이를 논한다. 근대 정당 출현과 최근 정당 구조를 살피며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토대로 독일의 현재를 진단한다.
베버는 직업 정치가의 내적 조건으로 열정, 책임감, 안목을 꼽는다. 이어지는 정치 본령으로서의 윤리를 다루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정치와 절대 윤리,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정치와 종교 윤리 부분은 조금 까다로운 부분이었는데 옮긴이가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과 인용된 사례의 배경을 각주에 상세히 실어주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 전쟁은 끝남과 동시에 적어도 도덕적인 논란도 종결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윤리 문제가 아니라, 오직 냉철한 현실 인식과 고결한 기사 정신, 그중에서도 특히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04~105
윤리를 지향하는 모든 행위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원칙 중 하나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즉, 모든 행위는 신념 윤리를 지향할 수도 있고 책임 윤리를 지향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념 윤리에는 책임이, 책임 윤리에는 신념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신념 윤리에 속한 원칙을 따라 행동하는 것―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기독교인은 옳은 것을 행하고, 결과는 하나님에게 맡긴다”―과 책임 윤리에 속한 원칙을 따라 행동하는 것―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예견 가능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르고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09~110
(...)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삶의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할 줄 아는 훈련된 시각과 그 현실을 견뎌내고 내적으로 맞설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28
2부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의 외적, 내적 조건을 알아보고 진보 과정으로서의 학문의 의미, 교수와 지도자의 차이,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구분, 학문의 역할과 한계에 관해 논한다.
베버는 대학교수가 강의실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 표명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서로 다른 질서들이 싸우고 있는 이 세계에서 특정한 실천적 입장을 학문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대학교수가 강의실에서 왜 이 두 가지를 모두 해서는 안 되는지 묻는다면, 예언자와 대중 선동가는 강의실의 강단에 서서는 안 된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언자와 대중 선동가에게 거리로 나가서 대중 앞에서 말하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즉, 누구나 비판할 수 있는 곳에서 말하라는 뜻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77
모든 쓸모 있는 교수의 첫 번째 책무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그들의 당파적 견해에 불리한 사실들을 인정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79
자신과 생각이 다른 수강생들이 있을지 모를 강의실에서 침묵하도록 강요받는 수강생들 앞에서 교수가 자신의 신념을 일방적으로 피력하는 것은 용기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너무나 쉽고 편안한 일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87
옮긴이 박문재의 해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시대 상황과 막스 베버의 삶에 대한 배경이 부족한 독자들의 빈 공간을 꼼꼼하게 채워준다. 사회·정치적 배경, 사상적 배경, 당시 독일의 상황을 설명하고 베버의 삶과 저작, 사상에 대해 간추린 후 『직업으로서의 정치』와 『직업으로서의 학문』 개요가 이어진다. 주요 항목별로 알기 쉽게 요약되어 있어 본문을 읽은 후 자신이 파악한 내용과 비교하며 정리하기 좋다.
2018년에 나온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이어 이번 책도 박문재 번역으로 나왔다. 현대지성클래식 시리즈에 박문재 번역이 많은데 그간 매끄러운 번역으로 그의 작업에서 만족을 느낀 독자라면 이번 책에서도 같은 만족을 느낄 것이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