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사방에서 솟아나는 듯했다. 약간 축축하고 미지근한 공기 속에서 피어나, 그들은 가만히 흘러 다녔다, 마치 벽들에서, 철책에 싸인 나무들에서, 벤치들에서, 더러운 보도들에서, 공원들에서 스며 나온 듯이."
책의 첫 부분이다. 24개의 아주 짧은, 한 장, 혹은 두 세 장 길이의 글들이 모여 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줄거리도 없고, 인물도 없다. 서사를 찾으려는 독자의 머리를 온통 헝클어 놓는다. 첫 글의 사방에서 솟아나는 그들을 읽으면서 뭐지? 사람? 안개? 버섯? 먼지? 첫 이야기, 아니, 이야기라고 해도 되나, 첫 단편, 아니, 단편도 이상하다. 첫 글조각, 첫 글 이후에도 수 많은 나, 그녀, 그, 그들, 그것 등이 등장한다. 이야기를 읽는 습관대로 대명사가 나타내는 뭔가를 계속 찾게 되지만, 찾을 수 없다.
제목의 '향성'은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생물의 경향을 가리키는 생리학 용어다. '향성' 무언가에 끌리는 것이라는 제목을 생각하며 글들을 읽어가니, 그래, 뭔가에 끌려서 변하고, 움직이는 그런 이야기들인가 끼워 맞추게 된다.
원래 삶에는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지구 상에 살아 있는 존재들 중에 주인공도 없다. 그러니, 소설에도 없고, 그저 '향성' 을 띄고, 움직이는 생명체들에 대한 단상 같은 것들일까?
이 소설에서 어디에도 이입할 수 없는 독자의 위치는 어디여야 하는 것일까?
멈춰서 건진 부분들이 있긴 하다.
다섯번째 글에서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도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죽어 있는 어두운 계단을 쳐다보지 않고 내려가서, 보도를 따라, 벽을 따라 소소하게 나아가는 것,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도 전혀 없이 그저 숨을 좀 쉬기 위해서, 약간 움직여 보기 위해서, 그런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와서 침대 가장 자리에 앉아 다시금 기다리는 것이었다. 몸을 오그리고, 부동 상태로." (20)
그리고, 열 여섯번째 글,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더 요구하지 않았다. 이것이었다. 그들은 그 점을 알았다. 아무것도 기다려선 안 되고, 아무것도 요구해선 안 되고,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고, 더는 아무것도 없었고, 이것이었다, "삶'이란.
다른 무엇도, 더는 무엇도 없다, 여기 아니면 저기, 그들은 이제 그 점을 알았다.
거스르고, 꿈꾸고, 기다리고, 노력하고, 도망가는 것은 금물이었다. 그저 주의 깊게 선택하고 (웨이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석류 시럽으로 할까 아니면 커피로? 크림 있는 걸로 아니면 없이? 살아가기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 여기 아니면 저기- 시간을 지나 보내야 했다. (52)
적고 보니, 좋은 것 같기도.
다시 읽으면 처음 읽었을 때보다는 좀 더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머리속이 헝클어졌던 읽기를 다시 반복하면 고문 같을 것 같아서 일단 마지막 장 읽고, 간단하게 기록 남기고, 덮어둔다, 묵혀 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