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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고양이와 나
  • 제인 오스틴의 책장
  • 리베카 롬니
  • 19,800원 (10%1,100)
  • 2025-12-16
  • : 2,095

리베카 롬니는 희귀 서적을 모으는 콜렉터로 우리가 열광하는 제인 오스틴이 열광했던 여성 작가들을 탐험한다. 셜로키언인 그녀가 18세기 문학계에서 사라진 여성 작가들을 발굴해 내는 그 여정이 얼마나 스릴 있는지!


한 사람, 한 사람 넘어가는 것이 아까울만큼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모든 작가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의 책을 읽고 싶어 갈급한 심정이 되었다. 읽지 않을 변명의 여지를 싹둑 잘라내듯 18세기 작가들의 작품들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너무나 쉽게, 내 이북 리더기들로 다운 받을 수 있었다. 전자책으로 편하게 볼 수 있고, 예상외로 첫페이지부터 너무 재미있는 책들이 많았고, 읽고 싶은 마음 또한 충만했으나, 전자책 페이지가 만 페이지, 이만 페이지 훌쩍 넘어가는 것을 보고, 아, 길게 봐야하는구나. 그래, 18세기에는 스마트폰도 없고, 다른 오락거리도 없으니, 책이 재미있었겠지. 길수록 더 좋았겠지. (분량으로 돈을 받아서 더 길게 쓰기도 하고, 돈의 압박 받아서 분량을 미처 못 채우고 줄이는 일도 있어서 안타깝기도 하고) 언젠가는을 기약하며 고이 저장해두었다. 종이책 구하기가 비교적 쉬웠던 <우돌포의 미스터리>와 <피메일 키호테> 는 원서 종이책으로 샀고, 앤 래드클리프의 <숲 속의 로맨스>, <시칠리아의 로맨스>, <이탈리아인>과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단순한 이야기> 는 번역본으로 나와있다. 


각 여성 작가들의 작품과 생애, 제인 오스틴과의 관계와 왜, 어떻게 그들이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중간 중간, 책에 대한 사랑 고백과도 같은 글들이 줄줄 흘러나온다. 


“책은 마음 내키는 대로 펼치고 덮을 수 있다. 낙엽이 바람결에 뜬금없이 흩날리길 반복하듯이 자유롭게. 등장인물이나 작가와 교감하면 항상 맴돌던 외로움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꼭 인물에 공감해야만 책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이점도 대조를 통해 나를 되비춘다. 책은 남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창인 동시에 내 마음을 알게 해주는 거울이다.” (25)


저자는 오스틴의 시대의 당대 작가들을 파고들면서 18세기에 소설이 해악으로 인식됐다는 증거들을 지속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소설은 “위험한 것”이고, “지나치게 외설적”이었고, 당시 젊은 여성들에게는 품격, 예의범절, 취향을 가르치는 명분으로 품행서(conduct book) 이 유행했다. 


“여성들이 소설 때문에 남자 보는 눈이 너무 높아져서 결혼을 기피한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여성이 늘어나고, 책을 쓰는 여성도 늘어났다. 


제인 오스틴의 책장에서 처음 소개되는 여성 작가는 당대에 비범한 천재성으로 유명했던 프랜시스 버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까지 사실주의 작가로 찬사받았으나 19세기 중엽, 제인 오스틴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자 버니는 오스틴과 비교되며 폄하된다. 


“마치 여성 소설가에게 할당량이 있는 것” 처럼 제인 오스틴이 있으니 그 자리가 차서 다른 여성작가들은 비교의 대상으로만 여겨진다. 그리고 이 현상을 나타내는 말도 있다. ‘스머페트의 법칙’ 이 부분 읽으면서 정말 그러네! 속으로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학 정전에서 밀려난 여자 작가들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또한 이 책의 다양한 환경의 다양한 작가들에게 공통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대 여성들의 지위이다. 제인 오스틴을 포함해 당시에 인기 있었던 소설들을 ‘구혼 소설’이라는 장르로 부른다는 것을 알았고, 이전에 사랑과 결혼만이 인생의 전부인 것 같은 이야기들에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들었다면, 그것이 18세기에는 더욱 더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성의 삶과 운을 옥죄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프랜시스 버니의 이름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패니 버니로 나와 있다. 영문학자 두디는 ‘패니’는 낮잡아 보는 약칭으로 무해하고 유치하고 내숭 떠는 어린 여성의 인상, 비평가 닫수가 그녀에게 바라는 이미지를 심는다고 지적했다. 헨리 필딩을 해리 필딩이라 부르지 않고, 제임스 보즈웰을 제미 보즈웰이라고 하지 않는데, 프랜시스 버니의 이름을 본인이 선호하지도 않았던 패니 버니로 책에 새겨버리다니. 뒤에 나올 여성의 이름을 지우는 다양하고 치졸한 방법들 중에 하나다. 


다음으로 나오는 작가는 제인 오스틴 외에 유일하게 낯익은 이름 ‘앤 래드클리프’이다. 고딕 소설을 좋아해서 낯익은 작가이다. <숲 속의 로맨스>, <시칠리아 로맨스>, <이탈리아인> 이 번역본으로 소개되어 있다. 


(.....) <우돌포>를 읽는 동안만큼은 누구도 나를 비참하게 하지 못할 것 같아.”
- <노생거 사원>의 캐서린 몰랜드 


여기 소개된 모든 이야기들을 읽어보고 싶었고, 그 중에 더 많이 읽고 싶었던 책들이 있었지만, 가장 읽어보고 싶은 책은 앤 래드클리프의 <우돌포의 비밀 The Mysteries of Udolpho> 이다. 제인 오스틴의 책장에 나온 책들 중 가장 먼저 주문한 책이기도 하다. 저자 또한 <우돌포의 비밀>이 자신의 평생 최고의 독서 경험 중 하나였다고 말하고 있다. <우돌포> 는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여성이 그것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이고, 자율성은 18세기의 여성에게 그랬듯, 21세기의 여성에게도 중요하다. 저자는 <우돌포의 비밀>을 읽은 후 고딕소설의 중심 요소인 풍경을 인물처럼 다루는 비법에 대한 심미안이 생겼다고 한다. “래드클리프는 작가가 풍경과 건축의 분위기 묘사를 통해 어떻게 인물의 정서를 드러내고 독자의 기분까지 지배하는지 보여주었다.” 


“ 나 이 책 너무 좋아! 평생 이 책을 읽으며 살고 싶을 정도야. 너를 만날 약속만 아니었으면, 천금을 줘도 책을 놓고 나오지 않았을 거야.” - 제인 오스틴, 노생거 사원


앤 래드클리프는 젠트리 계층 출신으로 웨지우드의 사업 파트너였던 삼촌 토머스 벤틀리의 후견을 받았다. 그는 여행 경험과 학식을 갖추고 있었다. 고미술을 연구했고, 어린 앤이 벤틀리의 피후견인이 되어 그의 집에 들어간 시기는 그가 고딕 건축 전시회를 위한 연구를 막 시작하였던 때라고 한다. 


고딕 건축과 관련한 온갖 서적과 판화, 주에 후기의 고딕 교회와 유적을 담은 그림들이 가득했던 집에서 자란 앤은 훗날 생생하게 묘사되는 고성과 수도원으로 고딕 소설의 붐을 가져왔다. 


이 외에도 저자가 가장 사랑하게 된 도발적인 샬롯 레녹스, “솔직히 말해 제게 얼마간 야망이 없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는 샬록 레녹스 소설보다 더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도발적인 글을 쓴 그녀의 책들 중에서 주문한 책은 <여자 돈키호테 Female Quixote> 이다. 기사도에 심취한 돈키호테가 풍차를 적으로 착각해 달려들었다면, 이 책의 애러벨라는 기사답게 행동하지 않는 모든 남자를 자신을 납치하려는 악당이라고 믿는다.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이다. 여자 키호테! 


다양한 개성과 형편의 여성 작가들, 열정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글을 써서 크게 성공했던 여성 작가들을  제인 오스틴 한 명만 남기고 지워버린 이들은 누구인가? 이와 같은 의도된 망각에 맞서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리베카 롬니 이전에도 제인 오스틴의 편지나 소설에 쓰였던, 제인 오스틴이 읽었던 이 여성 작가들을 발굴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 씨앗을, 더 나아진 읽기 환경에서, 리베카 롬니가 아주 훌륭하게 이어 주었다. 이 다음은 독자의 몫일 것이다. 


제인 오스틴이 포함된 문학의 계보, 세월이 지나면서 정전에서 밀려나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작가들과 소설들을 이제야 알게 되는 것은 분하고, 억울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동시에 반갑고, 신나고, 엄청 기대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소파와 고양이와 담요 사이에 몸을 묻고, 제인 오스틴이 애독했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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