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최초로 기록된 인공적인 국제 경계선을 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 국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47계의 경계(border, boundary) 로 본 세계사.라는 제목부터 너무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지도와 도시, 국경의 역사를 주제로 글을 써 온 영국의 저널리스트인데, 도서 전문 웹사이트를 창간하기도 했고, 지도와 경계를 주제로 한 팟캐스트를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도와 도시와 국경에 진심. 100회 이상 발행한 뉴스레터를 모아 총 세 권의 책을 출간했고, 이 책도 아마 그 책들 중 한 권인 것 같다.
'경계' 책에서는 border와 boundary 두 가지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뭐가 다른가 했는데, border 는 국경, boundary는 경계이고, (책 제목은 border) 더럼대학교 IBRU 국경연구센터 소장 필립 스타인버그에 따르면 "경계란 두 국가의 영토가 만나는, 두께가 전혀 없는 선"이다. 그리고, 국경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넘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선이다. 전자는 분할을 의미하고, 후자는 연결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공항 내부, 즉 물리적 경계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국경을 곧 넘게 됩니다."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책의 첫 문장이자 리뷰의 첫 문장인 최초의 인공적 국제 경계선, 사라진 국경은 기원전 3,100년경 사라진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였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이들용 역사책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아는 내용! 거기서 더 나아가서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구분은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존재해왔고, 이러한 경계가 실제 지리적 요소를 반영하지만, "경계선이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정체성이 경계선을 형성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사라진 경계선이라해도 그 의미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감정에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던 '국경', '나라와 나라의 경계'가 놀랄만큼 어설프고, 누군가의 의지가 반영되기도 했으며(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흥미롭다.
지난 달에 '역사주의'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인지하게 된 '유럽',그 중에서도 '영국인' '백인', '남성' 의 시점의 역사 이야기를 어느 정도 경계하게 되었는데, 저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한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것도 좋았다. 이 책이 과거에서 현재까지 단순하고 직선적인 역사 소설이 아닌 것이 한계인것 처럼 이야기했는데, 나는 그 점이 오히려 좋았다.
책은 역사 파트, 유산 파트, 외부효과 파트로 나뉘어져 있고, 역사 파트는 거의 연대기 순, 유산 파트는 현재까지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국경, 외부 효과는 땅 위의 통제권을 나누는 문제와 다른 유형의 경계 (날짜와 시간대 사이의 시간적 경계, 바다나 상공의 경계, 우주의 경계) 로 이어진다. 목차에 '유산'하고 '역사'하고 바꿔 썼는데, 이거 너무 큰 오류라서 2쇄때는 꼭 시정되길 바란다.
역사 파트는 아는 이야기들의 모르는 부분들 나와서 제일 재미있게 읽었고, '유산' 파트는 어쩐지 전쟁날 것 같은 으시시한 기분으로 읽었다. 모든 파트가 그렇긴 했지만, 외부효과는 특히나 상식을 시험 당하며 상식을 쌓으며 읽었다.
47개의 이야기로 각각의 이야기를 끊어 읽기 좋고, 각각의 이야기에 역사와 지리와 정치, 심리 등이 꽉꽉 차 있어서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나와 지금 또한 역사의 한 부분이 되고 있지만, 요즘같은 시기에는 역사가 단순히 지난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고, 역사 속 아픈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두렵고 생생하게 느껴진다. 책의 부제처럼 국경선이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지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다양한 역사책을 읽고 있고, 최근에 읽은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와 함께 지리와 역사를 함께 이야기해주는 이 책은 바로 그 '지리'와 인간이 그은 '선' 때문에 일어나는 수많은 불행한 갈등들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그래봤자 더 괴롭기만 하지만. 그거라도 해야지.
* 출판사 제공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