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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고양이와 나
  • 원하고 바라옵건대
  • 김보영 외
  • 14,400원 (10%800)
  • 2023-12-15
  • : 2,209

표지와 소재와 작가진이 엄청나게 인상적고 기대되었던 <원하고 바라옵건대> 


김보영 작가의 첫 작품 '산군의 계절' 첫 페이지부터 눈길을 확 사로잡는다. 


삼국사기가 인용되고 본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곰의 후손답게 이놈들은 먹는 데 진심이다. 고봉밥으로 식사하는 와중에 반주라며 술을 마시다가 안주라며 고기를 굽고, 고기 기름기를 잡는답시고 쌈으로 싸고, 쌈에 감칠맛이 부족하다며 장에 버무린 나물을 종류별로 넣어 먹다가는 입가심을 한답시고 과일을 산더미처럼 먹다가 어이쿠, 다음 끼니때가 왔네, 하고 또 밥을 짓는다. 마늘은 또 어찌나 좋아하는지, 국이든 고기든 나물이든 마늘을 한 주먹씩 버무려야 시원하다는 놈들이다.


아, 무슨 얘기가 나올지는 몰라도 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 먹는 얘기에 어깨가 들썩이는 시작이지 않은가. 게다가 김보영 작가. 

삼국사기를 좋아한다는 작가는 아직 나라에 유교도 불교도 없고, 왕권이 공고하지 않고, 신화와 역사가 구분되지 않았던 시대의 우왕후와 후녀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기에 신수 '백호' 가 들어간다. 


삼국사기에 관심 있었던 적 없었어서 이런 이야기인가, 긴가민가 하면서 읽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다시 읽으면, 삼국사기에 관심 있었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좀 더 이해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작품인 이수현 <용아화생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재미있어서 읽고 씁쓸한 결말임에도 바로 다시 한 번 더 읽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신수는 용이 되기 직전인 이무기. 대기근을 살아나가는 마을 사람들과 산과 땅과 물이 있는 장소를 파괴해나가는 외부인들의 침입, 우직한 주인공 규. 비극이지만 이해되고, 설득되고, 응원하고, 납득되는 그런 이야기여서 좋았다. 


기대하고 읽었던 위래 <맥의 배를 가르면> 은 사실 잘 이해도 안 가고, 동물원에 들어가서 광신도 같은 인간들이 맥이라고 추정하는 아메리칸 테이퍼라는 동물을 죽인다길래 어떻게 나올지 불안해하느라 더 몰입 안되기도 했다. 신수인 맥이 소재인 이야기다운 진행이었고, 리얼2, 꿈8 정도의 느낌이라 걱정했던 잔인한 장면은 안 나왔다. 반전도 있고,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던 이야기는 작가의 말을 보면 내 방식으로나마 좀 더 이해간다. 이 책에 작가의 말 짧지만 소중. 맨 뒤에 몰려 있다. 작가의 말 중 꿈 이야기는 허무하다고 하는데, 작가가 어느날 궁전 안을 헤매대가 가장 안쪽의 방에서 십수 미터 전면창으로 도시가 내려다 보였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었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당황스러웠다. 내 것은 다 어디로 갔지? 하지만 나는 허무감을 느끼진 않았다.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꿈의 끄트머리에서 내 마음을 향해 전능감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알게 되었다. 내 궁전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고, 깨어난 상태에서도 온 도시의 주인이었다. " 


이 이야기를 작품과 연결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작품이 선명하게 이해가지 않는 것은 꿈과 현실이 뒤섞여 있어서 그런거라 당연하다. 꿈을 꾸는 것, 자면서 꿈을 꾸는 것과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것 (소망을 가지는 것)이 현실과 서로 어떻게 꼬리를 물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보이는 느낌이었다. 꿈고 현실이 만나 꿈의 끝자락이 현실에 넘어오면서 꿈에서 느끼고 생각한 마음도 같이 넘어와서 현실에 자리잡게 되는 것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작품인 김주영의 <죽은 자의 영토>도 재미있었다. 진묘수가 나온다! 트위터에서 보고 너무 귀여워서 나도 굿즈 사고 싶었던 진묘수. 작가 역시 "신수라고 하면 백호, 청룡, 주작, 현무처럼 모습부터 멋지고 화려한 서사를 가진 존재를 떠올리던 제게 진묘수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오동통하고 귀여워 보이는 모습이 죽은 자를 수호하는 신수하로 하기엔 너무나 소박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볼수록 묘한 매력이 있어서 언젠가 진묘수의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진묘수 사진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현대 배경이라(위래 작가 작품은 현대+꿈속이 배경 아닌가 싶고) 앞의 작품들에 비해 술술 읽히는가 했으나,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이승과 저승과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이들이 인상에 깊이 남았으니, 작가는 이들이 나오는 작품을 계속 써줘라. 써줘라.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만으로 단편을 남기지. 이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단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마지막 작품인 이산화의 <달팽이의 뿔> 도 어질어질한 작품이다. 작가의 말까지 읽고나면, 작품 속에 나오는 택사나 봉안람처럼 주저앉아 울 것 같은 마음이 드는 단편이었다. 바다의 곤이라는 존재가 하늘로 떠 붕이 되는데, 그 때 붕재라고 할만한 재난을 인간세상에 일으키기 때문에 바다로 나가 하늘로 뜨려고 하는 곤을 가라앉히는 침어꾼들이 있다. 작가는 "어질지 않은 자연 앞에 인간의 노력이 헛되이 부서지는 이야기를 보고 싶었으므로 이 글을 썼다." 고 한다. 작가의 말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의 원뜻을 알게 되면, 더 와닿는 말이다. 달팽이의 뿔이라는 제목도 작품을 읽고 나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팔에 소름이 돋는다. 


앤솔로지는 좋기도 하고 별로기도 하지만, 좋은 작품 하나라도 있으면 좋은 독서라고 생각한다. 근데, 다섯 작품이 다 좋아? 다 다르게 좋아? 말도 안된다. 안전가옥의 픽픽 시리즈를 읽는 것은 처음인데,( 시리즈의 다른 책들은 표지가 딱히 관심 안 갔었다.) 굉장한 작품들이 있는 이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책들도 궁금해졌다. 단편이라서 좋은 작품들 (물론 장편으로 더 나와도 좋겠지만) 읽고 또 읽으면 더 재미있는 밀도 높은 이야기들, 많은 이야기들을 읽는 나에게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캐릭터들과 이야기들에 표지도 너무 아름답고,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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