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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
  • 어젯밤
  • 제임스 설터
  • 8,550원 (10%470)
  • 2010-04-15
  • : 2,970

보르헤스의 “두 왕과 두 개의 미로”에는 바빌로니아의 왕과 아랍의 왕이 나온다. 바빌로니아의 왕이 만든 미로에서 헤메다 신의 도움으로 간신히 빠져나온 아랍의 왕은 바빌로니아 왕을 자신의 미로로 데려간다. 그곳은 끝도 없는 사막으로 바빌로니아 왕은 결국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는다.

이 소설은 허구와 실제에 대한 우화다. 바빌로니아의 왕이 만든 인공의 미로는 아랍의 왕이 가진 사막을 넘어설 수 없다. 대부분의 소설도 그렇다. 가공의 이야기인 소설이나 영화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온갖 우연, 비상식, 황당한 사건에 비하면 얼마나 정돈되어 있는가. ‘백년동안의 고독’이 아무리 환상적인 이야기라도, 노동자 3천명이 기차에 실려 바다에 수장되는 현실보다 더 비현실적일 수 있을까?

제임스 설터 소설의 놀라운 점은 짜여진 이야기에서 일상의 비현실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무런 미사여구도 감정의 고조도 불필요한 수식도 없이 그저 건조하게 이런 일이 당신의 삶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는 많은 것을 품고 살고 있지 않냐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의 일상이 균열하는 순간이다. <혜성>에서 아내는 남편의 과거를 술에 취해 폭로한다. 아무도 알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아 하는 이야기. 서로의 곤란한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고, 또 그러려고 피상적인 말들만 오가는 자리에서 그런 폭로가 주는 당혹감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정돈되고, 질서정연한 매일매일이 어떻게 깨어지는지, 예의바른 인사말 아래 얼마나 많은 가시 돋친, 유혹적인, 때로 잔인한 말들을 감추고 눌러두는지. 그리고 때로 어떤 순간, 그 억눌린 말, 마음, 욕망이 분출되고 드러나는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중년의 사내가 내밀하게 감추어두었던 욕망은 우리가 마음속에 품어두고 가끔 꺼내보는 그것과 너무나 닮아있지 않은가.

때로 단순한 균열을 바라보고, 삶의 속살을 보는 것을 넘어,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순간도 있다. 남편과 부인은 서로 정말 참기 힘든 것은 하지 말아달라고 말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평화로운 휴일 아침, 부인은 남편에게 지금 잔디밭에서 아들과 놀고 있는 남편의 친구와 더 이상 자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심지어 그 친구는 지금 그들의 집에 신세를 지고 있었다. 둘은 집 밖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두고 거기서 만나곤 했다. 남편은 아니라고, 그런 일은 없다고, 당신 착각이라고 말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안다. 더 이상 사랑하는 '그'와는 만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생각한다. "난 오랫동안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을 뿐이다. 내게 특별히 더 그랬다 해도 그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읽는 순간 누구든 말도 안되는 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절실한 마음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또 믿어 버리는 순간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포기>

그래서 설터의 소설은 또한 순간의 포착이다. “여자의 머리칼 위로 불빛이 반짝였고, 누군가 여자에게 택시 문을 열어주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모든 걸 가졌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귀고리>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아빠를 사랑하는 딸과 함께 휴가를 갔다. 모든 게 완벽하다고 생각한 순간, 스쳐지나가는 아름다운 여자가 그 모든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평온한 하루하루의 어느 순간, 마치 맨홀에 빠지는 것 같은 순간을 맞게 된다. 그저 재수 없었다고 하기엔, 그 구멍을 판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마음속에서 은밀히, 때로 부끄러워하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욕망, 바램, 기억이 한참 후에 내가 여기 있다고, 모르는 척 했지만 계속 있었다고 빚쟁이처럼 나타난다. <방콕>의 남자는 가정을 꾸렸지만, 옛 애인의 제의에 흔들린다. 아닌 척 했지만, 그 자신도 알고 있다.

때로 그 순간은 내적인 방황만이 아닐 수도 있다. 친구들과 흥겨운 저녁을 보내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다가, 집에 가겠다고 일어난 제인은 택시에서 눈물을 쏟는다. <뉴욕의 밤> 암 4기라는 것을 알게 돼서. 남자친구는 없지만,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 가욋돈을 투자해서 꽤 수익을 남기기도 했다. 크게 문제가 있지도 없지도 않은 인생.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노골적인 이야기인데도, 설터의 담담한 어투는 제인의 외로움을 더 뼈저리게 전달해준다. 죽음을 앞에 둔 인간의 아득할 만큼 깊은 외로움, 슬픔은 친구들과의 시시한 대화로 인해 더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표제작인 <어젯밤>은 더 극적이다. 암 말기인 아내의 안락사를 도와주고 애인과 하룻밤을 보내고 났더니, 아침에 아내가 이층에서 걸어내려 온다. 읽으면서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 부끄럽고 어찌할 바 모르는 그런 순간을, 그러나 누구나 경험했고, 누구나 알고 있다. 어찌 보면 지나치게 멜로드라마 같은, 뜬금없거나 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설정들이다. 그러나 설터의 정말 놀라운 점은 이 황당한 이야기들이 반전이나 막장이 아니라, 우리 누구나가 삶을 살면서 마주칠 수 있는 순간으로 느껴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작품 중 대부분이 어딘가에서 들은 이야기에 살을 붙여 만들어냈다고 전한다. 그럴 법하다. 오히려 상상해서는 나오기 힘든 이야기일 것이다. 그만큼 설터가 풀어놓는 이야기가 범상치 않다. 흥미 거리로 전하는 사소한 남의 얘기, 오다가다 재미로 하는 말들에서 삶의 균열, 상처, 비밀을 엿보고 그것을 바로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게 능숙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미로 같은 끝을 기대할 수 없다. 미로는 아무리 복잡해도 결국 시작과 끝이 있다. 그의 소설은 너무나 현실에 닿아 있어서 이야기의 끝이 서사의 끝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다 읽고 나도, 마치 끝없는 사막 한 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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