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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돌이의 굴
  • 폭풍의 시간
  • 넬레 노이하우스
  • 13,320원 (10%740)
  • 2021-07-12
  • : 794



「"과거가 놓아주질 않네요, 그렇죠?" 


나는 우울한 기분으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식어서 쓴맛이 났다. 


"셰리든, 누구도 과거에서 도망칠 수 없어." 


아버지가 대답했다. 


"자기 삶의 구성요소로 만들고 그것과 화해할 수 있을 뿐이지. 지금 여기를 사는 것, 

그리고 지나간 것과 앞으로 올 것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아. 우리는 그 두 가지 모두에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으니까." 」- 『폭풍의 시간』 본문 中 -



 <끝나지 않은 여름> 이후 5년 만에 셰리든과 다시 만났다.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예전 리뷰 쓴 걸 다시 보고 그 날의 감성을 살려야 할 정도였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탓일까. 아니면 5년 전 내 시야에 콩깍지라도 껴 있던 걸까. 다시 돌아온 셰리든과 조던 블라이스톤은 정말로 낯설다. 그리고 이 어색한 감정이 사라지기도 전에 우리는 <폭풍의 시간>을 마주했다.


<여름을 삼킨 소녀>, <끝나지 않은 여름> 내내 셰리든의 불행했던 삶은 <폭풍의 시간> 초반에도 여전히 연결되고 있다. 뉴잉글랜드의 작은 도시 록브리지에서 새 삶을 살기로 결심 중인 셰리든. 타이밍 좋게 그녀의 삶에 얽히고 싶어 청혼까지 하는 지역의 명망높은 의사인 폴도 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이름도 바꿨다. 이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셰리든은 생각했지만 인생은 여전히 스물 한살의 셰리든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 어쩐지 불안한 결혼 준비에 혼란을 겪고 있는 셰리든 앞에 과거의 사건이 또 다시 터진다. 그녀의 과거가 하나씩 터져 나올때마다 읽는 나조차 불안하다. 스물 한 살인 나이가 맞단 말이냐. 도대체 무슨 삶을 살아온 거야, 셰리든...이라고 한숨이 저절로 나올 지경이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다시 발목이 잡히는 과정을 겪고 나서야 셰리든은 도피를 멈추고 과거와 제대로 마주하려 네브래스카로 돌아간다. 그리고 어릴 적 꿈꾸던 가수의 길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나아가고, 그로 인해 또 다시 셰리든 인생엔 새로운 사람들이 얽히게 된다. 


<폭풍의 시간>에서 셰리든과 대적하는 인물이 전작에서 셰리든의 누명을 벗겨준 데다 그녀의 오빠 조던 블라이스톤 형사인 건 사뭇 새로웠다. 전작 리뷰에서 분명 조던은 선한 인물이고 약혼녀 시드니가 빌런이라고 욕을 바가지로 했었는데 셰리든의 마지막 여정엔 조던이 모난 돌이 되었다. 망할! 넬리 노이하우스의 '셰리든 그랜트 시리즈 3부작'엔 꼭 이렇게 가까운 인물들이 시리즈에 따라 이미지가 변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전작에서 애정 있던 인물이 신작에서 정나미 떨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조던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전작에선 끈질기고 다분하게 파고드는 성격이 주인공으로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조연으로 떨어지니 인생에 얽히고 싶지 않은 진상이 되어버렸다. 넬레 여사, 이게 무슨 짓이요!


셰리든은 <폭풍의 시간>에서 기어코 모든 과거를 청산하는 데 성공하지만, 넬레 여사가 셰리든을 활용하는 방식은 여전히 매우 난폭하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셰리든이 원하는 꿈을 쟁취했을 거라고 보기 너무나 애매하게 묘사하는 데다, 여전히 사랑에 목 매고 정서적으로 나약한 셰리든의 모습은 가혹할 정도로 쉽게 보여준 느낌이다. 스물 한 살, 분명 어리다면 어린 나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과거를 생각하면 과연 이렇게까지 어리숙하게 남에게 인생이 휘둘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셰리든은 매번 무너진다. <폭풍의 시간>은 분명 스타로 성공하는 셰리든의 여정을 잘 그려냈기에 재미는 있었지만, 전개의 재미와는 별개로 넬레 여사가 셰리든을 그려내는 데 있어 3부작 전부 조금 아쉬움을 남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피하면 점점 악화될 뿐이야. 그걸 극복하는 방법은 내면의 강인함과 자의식뿐이야. 

   나도 그런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당신과는 다른 방식이었지만,

   어쨌든 자기에게 일어난 일에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알아."」- 『폭풍의 시간』 본문 中 -


넬레 노이하우스는 여름 컨셉 3부작은 그야말로 계절에 딱 어울리는 편성이었다고 생각한다. 음울한 장마비같았던 조던 블라이스톤과 한없이 폭염같은 셰리든과의 만남. 분명 이 타오르는 여름에 만날 가치가 있는 작품인 건 확실하다.



(위의 리뷰는 북로드의 서평이벤트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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