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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돌이의 굴
  • 반지의 제왕 1~3 + 호빗 세트 - 전4권
  • 존 로날드 로웰 톨킨
  • 176,580원 (10%9,810)
  • 2021-02-23
  • : 6,721



어린 시절, 그리스 로마 신화가 만연해 있던 세상에서 살았던 때가 있었다.

올림푸스 신화에 미쳐서 애니를 시청하고, 굿즈가 뭔지 모르던 나이에 캐릭터 카드가 갖고 싶어서 몇달 간 용돈을 모아 기어코 문구점으로 달려갔을 정도였다.

그 후에 중국 신화, 한국 신화, 일본 신화 등등 신화 자체가 빠져보려 했지만 생각만큼 끌리지 않았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쏟아내는 이야기에도 결국 한정된 '틀'이 존재했고 그 틀을 아는 순간, 모든 이야기가 식상하게 느껴졌던 탓이었다.

 

세월이 흘러 신화라는 존재가 민족 우월주의에서 기이한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을 때, 

거친 황야와 광대한 산맥의 이야기를 담는 작가를 만났다.

그리고 그는 다시 나를 그 시절, 신화에 열광했던 어린아이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호빗>은 50주년 완역 전면 개정판 시리즈 중에 4번째 작품이자 시리즈의 외전인 작품이다. 톨킨 작품 중에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반지의 제왕>의 인기에 힘입어 이젠 함께 인지도가 올라간 녀석이기도 하다. 명작의 반열에 올리는데는 좋은 책을 발굴하고 싶은 독자들의 힘이 아닐까. <호빗>은 그런 독자들의 열과 성이 만들어낸 책이다.


작품명에서 드러나듯이 <호빗>은 톨킨 세계관에서 묘사된 '반인족' 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의 특징은 보통 인간들의 허리만큼밖에 되지 않는 신체를 가졌으며 발이 매우 크고 술을 좋아하는 호쾌한 인족으로 소개된다. 신적 요소를 가진 신화형 소설에선 왠만하면 이런 우락부락한 캐릭터들이 '주연'을 차지하기는 쉽지 않다. 신화가 대변하는 우월한 민족성 반영 때문이다. 그럼에도 톨킨은 틀에 박힌 캐릭터의 멋짐을 표현하는 대신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빛나게 묘사한다. 이 매력적인 땅딸보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호기심이 가득한 세상이다.



「땅속 어느 굴에 한 호빗이 살고 있었다. 굴이라고는 하지만 지렁이가 우글거리거나 지저분하고 더럽고 축축하고 냄새나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앉을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마른 모래만 깔려 있는 건조한 굴도 아니었다. 그곳은 호빗의 굴이었고, 그 말은 곧 안락한 곳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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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그런데 호빗이란 무엇일까? 요즘에는 호빗에 대해 좀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을 보기 매우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그들이 큰사람이라고 부르는 우리를 보면 숨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체구가 우리의 절반쯤 되고, 수염이 텁수룩한 난쟁이들보다도 더 작은 종족이다. 호빗들은 턱수염이 나지 않는다. 그들은 마술을 거의, 아니 전혀 부릴 줄 모른다. 여러분이나 나같이 크고 어리석은 족속이 코끼리처럼 쿵쿵대며 어슬렁거리면 1, 2킬로미터 밖에서도 그 소리를 듣고 재빨리 조용히 사라지는 평범한 재주밖에 없다. ……이제 호빗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알았을 테니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자.」



마술도 못해, 수염도 없어, 키는 작아, 가진 재주는 그저 도망이 빠르다는 것 뿐인 '호빗'은 평범 그 이하인 것 같으면서도 모자람이 돋보이는 그런 매력이 넘친다. 사람을 좋아하는 인간 친화적인 태도와 그들이 사는 세상 자체가 '안락'의 상징이라는 말에 상상이 꼬리처럼 달리는 기분이다.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저 모지리 종족이 왜 주연 안에 들어가는 지 전혀 이해를 못했었다. 아라곤, 레골라스, 간달프, 김리 등 다른 캐릭터의 매력이 넘치는 와중에서 더 모자라 보였던 것도 한 몫 했었다. 그러나 톨킨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가 '호빗' 이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가장 다채로운 인간 군상을 보여주었던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나약하고 소심하고 탐욕스러운 일면에는 결말에서 커다란 전쟁이 끝나고도 새로운 자아를 찾으러 떠날만큼 용기 많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호빗>은 <반지의 제왕>에 나왔던 호빗들의 조상인 빌보가 겪는 여정의 이야기로, 자신의 세계를 사랑하는 호빗들 중에 유일하게 모험을 할 용기 있는 사람이자 그 특별함으로 인해 다른 호빗들에게 배척 받는 캐릭터이다. 이 영웅답지 않은 영웅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으면서도 개개인은 보잘 것 없는 나 자신을 투영하고 싶어진다. 호빗만큼이나 보잘 것 없는 나 자신도 세계를 구할 영웅이 되어 모험을 떠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마법이 톨킨의 작품 <호빗>에 깃들어 있다. 


이 작품은 유명한 작품이지만 그만큼 번역가나 출판사에 따라 번역 퀄이 차이가 많이 난다. 책을 많이 읽어 본 눈썰미 좋은 독자들은 오역이나 오타까지도 곧잘 캐치하여 편집자를 놀라게 하지 않나. 게다가 시대에 따른 단어 해석의 다양성도 책의 퀄리티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건만 아쉽게도 이번 50주년 기념 완역 개정판은 이러한 독자의 욕구를 충족하는데 실패한 듯 하다. 작가와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인 책이라는 작품을 두고 아쉬운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대규모 프로젝트였을 <반지의 제왕> 완역판인 만큼 지도나 가이드북, 하드케이스 등으로 독자를 유혹하려고 노력했으나 역시 책의 본질은 내용에 있다는 걸 알려준 사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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